부산에 살면서 지역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고 목격한다는 것은 지역민으로서의 연대감은 높아지지만 또 이런 것을 느낀 다는 것은 곧 나이를 조금씩 더 먹는 것이라서 별로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린 시절 부산의 한 복판인 서면에서 소나 말을 묶은 달구지를 본 기억, 당시 광안리나 해운대 가는 길은 멀기만 했는데 찻길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수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의 평안한 시골스러운 풍경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의 일만 해도 그렇다. 20여 년 전 해운대 신도시, 황령산 아파트, 화명 신도시 등 큰 변화가 있었고 이어 근래 10년 사이에는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부산의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영비행장 옆 콘테이너 야적장과 수영만 매립지가 이처럼 변화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이 이처럼 변하는 데 미술 갤러리라고 그대로 있을까? 원 도심인 중앙동, 서면, 동래 등에 퍼져 있던 갤러리들은 어느 순간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달맞이고개에서 갤러리들이 나오거나, 센텀시티나 마린시티에 신생 갤러리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향후에는 갤러리 지도가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지난 주 목요일자 부산일보에 소개 된 낯선 갤러리 이름이 눈에 띄었다. 마린시티에 위치한 갤러리 서린 스페이스, ‘마린’과 ‘서린’ 발음이 닮았다. 서린 갤러리에선 박성열 작가와 석봉 선생의 도예작품이 전시중이라 흥미로울 것 같았다.
마린시티 제니스 스퀘어 6층에 위치한 서린 스페이스는 아담한 크기였다. 작년 10월 오픈 이후 매 월 새로운 작가들을 초대하고 있지만 석봉 선생의 도예 작품은 상설전이라고 한다. 서지연 대표는 “마린시티는 외형적으로 큰 건물이 많고 왠지 갤러리의 문턱이 높게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이 지역의 특성상 고급 주택지와 외국 관광객들이 많긴 하지만 부산 시민 모든 분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갤러리가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박성열 작가는 대구와 수도권에서 주로 활동 하고 있는 중견작가이다. 구상 작품이 주로인 박성열 작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레핀 아카데미에서 수학 한 작가이다. 일리야 레핀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화풍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에 많은 관심이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 소개 된 작품들도 자연의 한 소재인 고목이 눈에 띄고, 밝고 화사한 풍경과 소녀의 이미지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고목 아래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씩 있는데 서 대표는 이 개 들이 유기견이라고 한다. 고목과 유기견이라… 고목과 기다림, 외로움 등의 감정이 섞여 있는 듯하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사계절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특히 향기란 뜻을 가진 Perfume 시리즈는 생기 있는 화려한 봄 풍경들을 느끼게 해 주고 있고 ‘바람 부는 날’이란 작품은 억새풀 사이로 홀로 바람을 맞고 있는 쓸쓸한 여인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년의 비바람과 백년의 혹한 혹서를 격어 세월의 무늬를 가진 줄기와 가지들, 바윗돌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휘어진 뿌리가 처참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시골 마을 어귀의 고목에서 아름다움 그 이상의 무엇이 느껴지는 것이 과연 화가인 나 혼자일 뿐일까. 휴식의 그늘로 때로는 기다림의 장소로 풍요의 열매로 생명에게 헌신하는 그 모습은 삶을 아름답게 살아간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서 느끼는 감동과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나는 한동안 고목의 기다림에 푹 빠져 북을 든다.』 – 작가 노트 중 –
전시장 안에는 도예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석봉 조무호 선생의 작품인데, 매월 초대하는 작가들과는 별개로 상설 전시 하고 있다고 한다. 석봉 선생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접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데 몇 년 전 가마를 없앤 후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진 않아 기존 작품들의 가치가 높은 상태라고 한다. 전시장에는 도자기 작품과 함께 도판화 작품들도 눈에 띈다. 도판화 작품은 백자흙을 평면형태로 만들어 초벌구이를 하고 이후 광물질 불변안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 완성한다. 서린 스페이스에서는 이러한 도판화 작품들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서린 스페이스는 4월 13일부터는 프린트 베이커리라는 전시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프린팅 해서 소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신생 갤러리의 새로운 도전, 활기찬 활동을 기대 해 본다.
– 장소 : 갤러리 서린 스페이스(부산 마린시티)
– 일시 : 2013. 3. 19 – 4. 12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