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중미술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었다. 대학가는 최루가스로 뒤덮이고 대학 정문에는 으레 붉은 바탕의 큰 걸개그림이 나부끼곤 했었다. 펄럭이는 커다란 걸개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군부정권이 종식되고 걸개그림은 점점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미부아트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는 ‘오윤 회고전’ 전시장을 들어서자 문득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강인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 아래 적혀 있는 칼노래, 애비, 울음, 징, 대지 등의 제목에서 ‘민중’ ‘노동’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사실 오윤은 80년대 초반 민중 판화․민중예술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오윤의 작품 중 특히 춤과 관련된 작품들이 주제다. 오윤의 부친은 소설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 선생이고 그의 외가는 동래학춤을 전승한 집안이었다. 그래서 그 역시 춤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직접 동래학춤의 무보를 그릴정도로 애정을 가지기도 했다. 오윤은 직설적이고 강한 주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전 그래요. 예술가라는 말은 듣기는 싫어하지만, 좋아요. 여하튼 저는 예술가라면 무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들 얼마나 근사한 무당들인가가 문제이고, 얼마나 우릴 울려 주고 감동시키느냐가 문제지요. 무당만큼 울려주고 감동시켜 보라 이겁니다” – 오윤의 <오늘의 우리에게 굿은 무엇인가> 중 –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판화 작품이며 스케치북에 그려진 드로잉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생전 판화작품과 사후 판화작품이 같이 전시되어 있는데 당시만 해도 에디션넘버나 판화 관리가 지금처럼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1점만 남아있는 작품도 있었다.
스스로 무당이고 싶었던 작가 오윤. 동래학춤의 춤사위가 원형이 된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윤범모 교수는 오윤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예술가는 무당이 되어야한다는 오윤의 생각,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이 말의 함의는, 오윤은 80년대식 민중미술가라는 범주에 묶어 둘 수 없음을 천명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오윤은 특정 시기의 특정 이론 이전에 이미 우리의 전통성을 기본으로 한 우리 민족의 미술가였다. 그것은 세계인을 향한 신명과 진실의 무당 예술가임을 실천한 결과이기도 했다. 다른 표현으로 오윤의 세계는 80년대식 ‘민중미술’ 차원 이상의 커다란 세계에서 자신의 예술을 펼쳤음을 이해하게 한다. 오윤은 춤을 추는 예술가, 바로 무당처럼 구김살 없는 진실과 감동을 추구했고, 또 그것을 실천한 시대의 선구자였다. 춤 추는 무당 화가, 바로 오윤의 진면목이지 않을까”
– 장소 : 미부아트센터(부산시 서구)
– 일시 : 2013. 2. 20 –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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