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굵지만 정감 있는 목소리였다. “토요일 오후에 뵙죠” 딸깍.
박일철 작가와 통화를 마치고 문득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한 오래 전 추억들은 아직까지 가슴 한 쪽 묵직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연결 고리에 박일철 작가가 있다. 박일철. 부산 컴퓨터 그래픽 역사의 산증인. 적어도 난 그를 그렇게 평가하고 기억한다.
지난 토요일 오후, 달맞이 고개를 땀을 닦아가며 올라갔다. 갤러리 화인에 들어서자 박일철 작가가 먼저 도착 해 있었다. 정창희 큐레이터가 내주는 물 한잔이 참 시원하다. 곧 갤러리를 이전 할꺼라는 정보도 준다. 센텀 쪽으로 옮긴단다.
박일철 작가의 이름을 들은 지는 20여년이 다 되었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하기는 처음이다. 그와 전화 통화는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와의 인연은 내가 처음 컴퓨터 그래픽에 입문 할 때 나의 선생의 선배쯤이랄까? 날 가르쳐 준 선생을 통해 박일철 작가의 화려한(?) 이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을 만날 기회가 그렇게 없었나 싶을 정도이다.
박일철 작가와의 만남은 처음 치고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래된 선후배처럼 옛 이야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운 인터뷰였다. 선생은 십 수 년 동안 재직하던 부산예술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3~4년 전부터 전업 작가로 작품에 열중하고 있다.
첫 전시회를 제외하고는 세 차례 전시 주제가 모두 프랙탈이다. 카오스 이론을 이미지화 한 것이 프랙탈 쯤 될 것 같다. 작가는 프랙탈 이미지에 뭔가 자기만의 느낌을 덧붙이고 싶어 출력된 이미지 위에 붓질을 곁들였다. 프랙탈 이미지는 그만의 시공간으로 되고 그 속에서 우주와 질서, 무질서, 이미지를 탐닉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다.
작가는 매일 아침 일찍 작업실에 가서 몇 시간동안 작업에 흠뻑 빠진다고 한다. 프랙탈 이미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 미지의 공간 속에 빠져든다고 한다.
Q. 박 작가님, 다음 전시에는 또 어떤 변화를 생각하고 있나요?
A. 네, 기존 프랙탈 작업들을 영상으로 만드는 것과 프랙탈 이미지 전체를 손으로 그려보는 작업을 한 번 해 볼까 싶습니다.
프랙탈 이미지는 불교의 만다라와도 연결된다. 우주의 진리를 이미지화 한 만다라. 박일철 작가가 직접 붓으로 프랙탈을 그릴 때 즈음에는 그의 사상이 종교에 더 근접 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영상작품도 선보이고 있는 이번 전시는 갤러리 화인에서 6월 30일까지 열린다.
장소 : 갤러리 화인
일시 : 2012. 6. 16 – 6. 30
전문가 블로거 추준호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