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갤러리 이배로부터 우편으로 팸플릿을 받았다. 하얀 표지에 고급스럽게 제작된 팸플릿에는 황나현 작가의 전시소식과 작품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주로 얼룩말이 크게 그려졌고 배경에는 진한 색감의 자연물이 그려졌으며 그 사이로 장난스럽게 뛰어 놀고 있는 꼬마 인간들이 보인다. 전시 주제는 WE(Worthful Expectation, 가치 있는 기대)이다. WE는 때로는 ‘우리’라는 의미로도 전달한다. 작품을 만나러 간 휴일, 마린시티의 오후는 한가했다.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과 방파제 쪽으로 산책을 하러 온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마린시티에는 여러 갤러리가 모여 있다 보니 관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갤러리 이배와 김재선 갤러리, 갤러리 예동이 인근에 있고, 길 건너편 제니스 스퀘어에는 갤러리 서린 스페이스, 수호롬, 문앤박이 있다. 또 주변에 갤러리 아리랑, 아시안아트웍스 등이 있다. 갤러리 이배에 들어서니 김민정 큐레이터와 서민언 큐레이터가 인사를 한다. 영상 인터뷰를 기꺼이 해 주는 큐레이터라 오히려 이쪽에서 인사를 해야 할 형편이다.

전시장에는 도록에서 본 얼룩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검고 흰 무늬의 얼룩말들은 동그란 눈망울을 하고 머리에는 꽃을 꽂고 있다. 어떤 얼룩말은 꽃 왕관과 목걸이도 하고 있기도 하다. 주위에는 새들이 얼룩말 머리 위에 앉아 있기도 하고, 작은 꼬마 인간들이 뛰어 놀고 있다. 얼룩말의 씰룩거리는 코끝에는 가느다란 털들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초식동물인 얼룩말은 비교적 온순한 동물이며 다른 동물들과 함께 풀을 뜯지만 잘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커다란 눈을 작품 밖 관객을 향해 바라보는 얼룩말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작가가 이룩한 세계는 원초적이며 순수한 교감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공간이다. 자연을 아우르는 장엄한 숲 속 얼룩말들의 강하고도 너그러운 눈빛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인 집단의식을 비판한다. 서로를 향하여 조용히 관조하는 얼룩말들의 응시는 현 시대의 진정한 ‘우리’를 바라는 외침이며, 또한 폭력성 짙은 물질문명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반성의 시선인 것이다.』<갤러리 이배 전시 설명 중에서>

황나현 작가는 작품 속에 ‘우리’라는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라는 단어는 평범하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우리’는 정말 ‘우리’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라고 하면 좁게는 가족, 친구, 동료, 넓게는 나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구성원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갈수록 폭력적이고 거칠어지며 각박해져 가고 있다. 작가는 얼룩말과 자연물, 거기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인간을 통해 평화로운 ‘우리’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룩말들의 시선은 어쩌면 작품 밖의 인간들에게 보내는 안타까움의 시선일 수 도 있다.

『이렇듯 중요한 ‘우리’이지만 ‘우리’는 전제와 관점에 따라, ‘그들’이 ‘우리’가 되기도, ‘우리’가 ‘그들’이 되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우리’와 ‘그들’로 나누어진 상황이 그냥 ‘우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토록 소중한 ‘우리’에게 폭력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개인의 관점을 떠나서 ‘우리’와 ‘그들’이 아닌, 그냥 모두가 ‘우리’일 때의 행복을 그려보고 싶었다.』<작가 노트 중에서>

황나현 작가는 2004년 이후 12번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국내 화단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화면 구성 뿐 아니라 작품 속 작가의 메시지가 따뜻해서 남녀노소 여러 계층에서 좋아한다. WE(우리)에게 WE(가치 있는 기대)를 얼룩말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는 황나현 작가의 개인전은 11월 23일까지 갤러리 이배에서 이어진다.

– 장소 : 갤러리 이배
– 일시 : 2014. 10. 22 –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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