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남주展(K갤러리)_141017

                              <경계의 思惟, 그 감각의 유희>

박옥생, 미술평론가, 박옥생미술연구소장

1. 지각적 세계에는 붉은 꽃이 피어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상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예술가의 이상세계는 작품표현의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작가는 원시자연을 통해 잃어버린 낙원이나 오랜 과거의 시간을 꿈꾸거나 종교적, 성찰적 이상향을 그리기도 한다. 작가 배남주의 이상세계에 관한 질문은 현대성을 바탕으로 하는 동시대의 감각적 이상세계를 가시화 한다는데 주목할 만하다.
배남주는 붉은 또는 푸른 풍경들을 포착한다. 영화의 스틸 컷과 같은 장면들은 인물과 배경이 정지되어 있다. 영원의 시간이 포착된 순간이다. 판타지 영화와 같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강렬한 색이 춤춘다. 뿔을 달고 있는 주인공은 바다풍경에서 배회하거나 키가 큰 나무 나 꽃은 기둥보다 무거운 꽃잎을 떨구고, 감성(슬픔)에 겨워 요동치고 있다. 이러한 <전날의 섬, 2011>, <그때 너는 붉었다, 2011>와 같은 작품들은 축축하고 깊은 시적 이미지를 던진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들은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기초로 쌓아 올린 상상력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상세계는 낯설다. <beautiful stranger, 2012>에서 보여주는 이 낯섬은 작가가 시각적, 물질적 세계에서 정신적, 존재론적인 세계에로 이행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뿔을 달고 있는 인물이나 뿔이 강조된 사슴, 원숭이, 고양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자연과 교감하기 위한 매개체, 안테나임을 알 수 있다. 고전적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사슴뿔, 나무(神木), 솟대 같은 상징적 도상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풍경은 자연의 본질적 실존의 모습이며 초자연적, 우주적 세계에 도달한 작가의 이상세계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낯섬에 관한 언어는 배남주의 전(全)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세계를 포착하는 시선의 기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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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가의 화면에는 주관적이며 감각화 된 색감들을 볼 수 있다. 즉 작가의 감각기관을 통해 해석된 정신화 된 자연의 풍경인 것이다. 이는 메플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가 말하는 “세계는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정보를 주고받는 또 하나의 거대한 몸이다”로 해석한 것과 같다.(조광제 外, <<현대철학의 흐름>>, 동녘, p.91) 즉 퐁티는 우리의 몸과 관계하는 외부의 세계를 진정한 진리의 원천이며 그 세계와 우리 몸이 완전히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인간적 실존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세계를 우리의 신체(몸)으로써 지각한다는 것이다.
배남주의 작품에는 이러한 강화된 감각의 변주들이 뿌려져 있다. 이는 곧, 퐁티가 말하는 몸의 철학, 지각적 현상학의 모습들과 상통되고 있다. 낯선 작가의 이상세계는 감각의 세계이고 작가의 지각이 포착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에는 붉은 꽃이 피어나고 검은 고양이가 호흡한다.

2. 현실에서부터 초현실로: 불확정의 유희
배남주의 감각세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정신의 세계이다. 그 정신의 세계는 현실을 기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초현실의 세계이다. 현실이면서 초현실인 이 불확정적인 과도기의 세계는 작가의 주관적 세계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그 세계는 행복과 불행의 가운데, 뜨거움과 차가움의 중간, 질문과 가치가 배체된 불확실한 것이다. 이는 신비하고 오묘하다. 작가는 이를 중간세계라 이름하고 있다.
사실 이 중간세계는 데리다(Derrida)가 말하고 있는 의미들이 요동치고 미끄러지는 불안정한 세계인 것이다. 비확정적이고 불안정한 경계에서의 사유가 곧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언어가 갖는 의미이다. 작가는 감각으로 몰입되어 다시 화려한 색으로 탄생한 자신의 이상향, 그 중간세계에서 영원의 안정과 무한의 내밀한 상상을 느끼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적인 전통사유들, 안과 밖,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권력과 복종과 같은 인간사고의 이원성의 횡포를 폭로하고, 어떠한 우열적 사고와 개념의 존재도 부정하고 있다. 단지 존재하는 것은 의미의 차이와 의미의 미끄러짐과 겹침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고전적 이항대립의 사유들을 경계하고 가부(可否)의 가치판단을 넘어서는 사유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유에는 몸의 지각으로 포착된 순수한 존재의 표정만을 담은 감각적 풍경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실, 작가의 이상세계로서의 중간세계, 우열적 개념이 부재하는 세계로의 고민은 자아와 외부 환경의 본질적 존재와 의미를 포착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즉 감각, 지각의 세계는 인간실존, 세계의 본질적 존재를 찾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 작품에는 공허와 불안, 공포와 같은 부정적 의미의 미적 경험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 위에 화려함과 신비함과 같은 아름다움에 관한 긍정적 경험들이 공존한다. 이러한 공포와 미는 회화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은 안락한 회화적 경험을 구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성을 담보로 한 의미의 경계, 사유의 경계에 관한 이상세계의 주관과 자기 성찰적 고민을 가시화하는데 있다.
분홍, 노랑 꽃 들이 밀집된 풍경 속에 녹아있는 고양이의 신비한 풍경은 작가의 중간세계에로의 정리된 언어로 볼 수 있다. 몸의 감각이 온전히 자연 속에 함몰되어 녹아들어간 작가의 시각적 경험은 <골덴, 2011>, <데미안, 2011>과 같은 작품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영화의 몽타주(Montage) 기법과 같은 두 개의 화면이 교차되고 있는 듯, 그 화면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과 지각된 세계에로의 정신의 만남을 보여준다.
그 세계는 꽃(자연)이면서 대상인 다양한 언어의 변주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작가가 설정하고 있는 세계에로의 모습을 통해 이항대립적인 고전적 세계의 허구를 보여주고 감각이 확장된 지각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배남주의 이상세계는 봉인된 영원한 시간과 정신이 녹아들은 초월된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그 속에는 존재의 온전한 본질적 표정이 숨 쉰다. 이는 작가가 현대성 속에 존재하는 정신의 오염이나 세속적인 것에서 영성(靈性)이나 신성한 것에 관한 고민의 흔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의 정신과 자연에 관한 낯선 또 다른 유희(遊戱)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장소 : K갤러리
– 일시 : 2014. 10. 17 – 11. 7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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