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출처 : 뉴스투데이]
마치 행복한 동화 나라에 온 것 같다. 보기만 해도 따스함을 전하는 정성원 작가의 작품이다.
정성원 작가는 토끼, 사슴, 양 등 초식동물을 주로 그린다. 바람이 불어오면 털이 살랑살랑 움직일 것만 같은 섬세한 표현과 사랑스런 표정의 동물이 참으로 귀엽다. 동물을, 그것도 초식동물을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좋아해서 그렸다”고 할뿐이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토끼, 강아지, 고양이 등 동물을 많이 길렀고, 동물들의 조건 없는 사랑에 매료되어 화폭으로 옮겼다.
동물 시리즈 중 가장 먼저 그린 것은 사슴이다. 동물원을 찾은 작가는 귀여운 사슴들이 아름다운 뿔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됐다. “저렇게 귀여운 동물들이 싸우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꽃을 달아주고 싶었죠. 제 그림에서 ‘꽃’은 순수함과 행복을 상징하거든요. 꽃을 달아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체로 탈바꿈해주고 싶었습니다.”
스무 살 네덜란드에서 본 양들을 아늑한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서,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불현 듯 날아다니는 양들이 떠올라서, 높이 날지 못하는 미운오리새끼를 위해 친구 기린이 오리를 높이 올려주면 어떨까 싶어서 작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렇듯 정성원 작가의 작품 속 등장하는 동물들을 각자 그가 느꼈던, 혹은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 그림을 보고 그냥 좋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제가 원하는 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거예요. ‘왜 사슴 뿔에 꽃이 폈지?’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면서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었죠. 그림을 그릴 때는 저의 철학과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지만, 그림을 볼 때는 관람자가 떠오르고 생각나는 것이 바로 그 그림의 주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관람자들이 왜 이렇게 그렸냐고 웬만큼 집요하게 캐묻지 않는 이상은 두루뭉술하게 설명해요. 제 생각보다는 관람자의 생각이 주제가 되니까요. 마음껏 상상하셨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예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줄곧 거칠고 역동적인 설치미술, 사진 작업을 주로 했다. 공격적인 작업에 지도교수와 비평가들은 호평을 보냈지만, 대중에게는 외면당했다. 작가는 대중과 타협하고 싶었다. 시각적인 타협이 아닌 의미적인 타협으로, 대중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것이 현재에 이르렀다.
예쁘고 귀여운 그림으로 보아서는 작가에게 도저히 어려움이 없을 것 같지만, 작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정성원 작가는 특정 색을 잘 구별하지 못 하는 색약(色弱)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남들보다 색을 조금 못 쓸 뿐이지 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림을 눈으로만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으로 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색약인 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또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저는 굉장히 힘들게 작업하는 타입입니다. 작업량을 채우지 않으면, 교수님이 불러도 안 나갈 정도로 몰아붙이며 작업했죠. 마치 제가 그림 공장이 된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제 생각보다 모든 것이 빨리 왔어요. 제 그림을 좋아해주는 분들도 많아졌고, 개인전도 10회 이상 열었고. 모든 작가들이 한 번쯤은 오는 자기 작업에 대한 고민과 슬럼프도 더 빨리 온 것 같아요. 한동안은 술에 빠져 살기도 했죠. 서른다섯 살 즈음까지 이루고자 했던 목표들이 있었는데, 서른이 되기 전에 다 이루게 됐어요.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힘겨움에 마음 한쪽을 내준 작가는 다시 털고 일어섰다. 마음을 편히 먹고, 모든 걸 내려놨다. 특히 전시장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관람자들이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언젠가 한 분이 오셔서 제 사인을 받는데, 너무 감동받아서 막 울려고 하는 거예요. 제 전시는 일부러 다 와서 보실 만큼 제 팬이였데요. 울먹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에 오히려 제가 감동을 받았어요.(웃음) 그 분이 ‘꼭 계속해서 그림 그려주셔야 되요. 부탁이에요’라고 말하며 가셨어요. 워낙 섬세한 작업을 하다 보니 때로 고통스러울 때도 많은데, 그렇게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응원을 생각하면 제가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느껴져 힘을 내게 돼요.” 정성원 작가의 붓 끝에서 시작된 그림은 더 이상 그에게만 행복한 그림이 아닌 것이다.
정성원 작가는 스스로를 ‘행복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을 때는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는걸 작가는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돌아가고 싶은 날이 없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더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처럼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요.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딱 지금처럼만.(웃음)” – 강이슬 기자 –
– 장소 : 갤러리 아인
– 일시 : 2014. 9. 1 – 10. 2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정성원 작가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