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전시장을 들어서니 사방 벽면에 그림이 가득 붙여져 있다. 120~130호 정도 크기의 작품들이 대략 40점 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전시장에 들어 온 관객들은 작품의 수에 먼저 놀라고, 작품이 주는 강한 이미지에 또 한 번 놀란다. 이종현 작가가 그린 대다수의 작품은 빠른 속도로 그린 누드 그림(제스쳐 드로잉)인데, 부드러운 곡선과 안정된 느낌에 ‘아, 멋지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큰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그림들은 인체를 사실적으로 그렸다기보다는 특징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분적으로 해체하여 그리기도 했다. 물고기의 특징을 강조한 몇 점의 작품도 눈에 띈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이종현 작가는 여전히 특유의 콧수염과 막걸리를 좋아할 듯한 인상으로 반갑게 맞아준다. 최근에 전시준비를 하면서 작업실도 이전 했다고 한다.
– 이렇게 큰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면, 한 작품 완성하는데 얼마만큼 걸리나요?
– 글쎄요, 간단한 작품은 한 시간이 채 안 걸릴 겁니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얼마나 오랜 시간의 숙련기간이 있었으면 그럴까싶다.
이종현 작가가 드로잉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의 석사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본 논문은 바로 이 ‘그린다’는 인간의 행위와 그 결과물, 곧 ‘그려진 것(thing drawn)’으로서의 드로잉(drawing)을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 아래의 본문에서 고찰하게 될 터이지만, 드로잉은 단순히 회화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로서 대상의 피상적 이미지를 주로 선을 이용하여 묘사하는 스케치, 또는 좁은 의미의 소묘(dessi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독자적 조형언어를 내포하고 있는 현대 미술의 한 장르라는 점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할 때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순간 떠 오른 감성에 따라 촉각적인 반응으로 작업한다. 작가의 이런 ‘습관’은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바로 표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인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느낌이나 감정이 생겼을 때 캔버스를 준비하고 물감을 짜고, 밑칠을 한 후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이미 그러한 감정이 소멸한 뒤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종현 작가의 그림을 보면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바뀌면서 대중들의 색에 대한 감각과 눈높이는 높아졌다. 같은 붉은 색인데도 진하고 연하기에 따라 그 느낌이 다름을 알고, 명품과 짝퉁을 구별할 만큼의 눈썰미도 높아졌다. 더불어 회화에도 많은 색상이 사용됨은 물론이고 요즘은 한국화도 색채의 사용빈도가 많아졌다. 이처럼 휘황찬란한 현실에서 이종현 작가의 작품은 분명 묵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있다. 소묘는 화가가 되기 위한 가장 기초라는 일반적인 상식은 차치하더라도 이종현 작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필력은 분명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흔히 연필 드로잉은 색을 칠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하지만 이종현 작가는 드로잉만으로도 완성된 작품이 된 다는 것을 이번 전시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작가님, 언제까지나 드로잉만 하실 겁니까?” “아뇨, 다음에도 스프레이 작업도 한 번 해 볼까 싶습니다.”라며 웃는다. 전시가 짧아 아쉽기는 하지만, 드로잉 작품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번 ‘이종현 Drawing展’은 8월 15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부산시청 갤러리
– 일시 : 2014. 8. 11 –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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