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화展(갤러리 예동)_140719

■ 김홍기 평론

“당신을 위한 화장법_여자의 피부는 권력이 아니다. 우리는 남과 같아지기 위하여 우리 자신의 사분의 삼을 버린다.” (쇼펜하우어)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비 브라운의「아름다움의 진화 Beauty Evolution」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20대에 뉴욕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입성. 신디 크로포드와 같은 모델과 작업 하면서 그들의 아름다움에 주눅 들어야 했던 그녀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살 필요 없는 ‘가장 아름다운 화장법’을 설명합니다. 패션잡지 속 여배우의 얼굴에서 주름이나 잡티를 찾을 수 없을 때, 여기엔 사진작가와 아트디렉터와 같은 이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있음을 깨달으라고 충고합니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로 결점을 덮고, 조명으로 얼굴의 굴곡을 대비시킨 후 이도 모자라, 주름살과 눈 아래 늘어진 부분을 지워 얼굴을 짜 맞추는 보정사의 작업이 들어간 사진이란 것이죠. 50살의 나이, 154센티미터의 단신인 그녀가 눈가와 입가에 머무는 주름을 편안하게 햇살아래 드러내는 모습에서 따스한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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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 해도 목적지를 잃어버리게 한다면 소용이 없다. 유행이 변한다 해도 자신만의 스타일은 영원한 것이다. 메이크업이 변화한다고 해서 자신의 모습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사라지는 아름다움은 반대한다. 그저 조금만 더 아름다우면 된다. 그것이 메이크업의 정도다.」<바비 브라운 ‘여자에게 피부는 권력이다’>

언제였나.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보는데 인상적인 카피가 눈에 띄었습니다. 왕후로 분장한 모델이 도도한 기품을 자랑하며, 자신 앞에 고개 숙인 남자들을 향해 하얗게 잡티 하나 없는 피부를 내보입니다. 피부가 성공과 권력을 위한 지표가 되는 세상. 남성/여성에 상관없이 취업을 대비해 피부 클리닉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지요. 여성의 70퍼센트 이상이 사회의 높은 미적 기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외모 중심주의와 성형천국의 시대를 살아가며 지친 여성분을 위한 그림을 골랐습니다.

작가 홍일화는 여성의 미,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해 회화적인 성찰을 보여준 작품을 그립니다. 그림 속 여인의 머리 위에 놓여진 수많은 생물체들,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그림 속 여인의 피부를 보십시오. 노화방지와 주름방지, 피부노화를 막아주는 획기적인 물질이 생산되는 생물입니다. 물고기 부레에서 임산부의 태반에 이르기까지, 고운 피부를 향한 인간의 집착은 끝이 없습니다. 작가는 증명사진과 패션 사진의 형식을 캔버스 위에 빌려 우리 시대 정형화된 미인천국의 시대를 그립니다. 홍일화는 패션잡지 엘르(Elle)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미디어가 양산하는 여성의 이상적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비판합니다. 지나치게 뚜렷한 골격, 푹 들어간 쇄골, 과장된 메이크업으로 포장된 우리 시대의 여성들의 자화상을 드러내지요. 화장중독의 시대, 오히려 쌩얼 열풍이 불지만 곧 이것조차 마케팅의 일환으로 차용되는 것이 현실이지요. 홍일화의 작품에는 수많은 여성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아름답더란 한 마디의 수사학으로 포장하기엔, 한 가지씩 단점을 안은 얼굴을 그려내기에, 실제 화장하는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화장이 잘 먹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화장은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열심히 보호팩을 바르는 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동그란 눈, 오뚝하고 긴 코, 발그스레한 입술과 고른 치열, 찰랑찰랑한 머리 결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해 투자하는 돈과 시간, 여성들의 사회적 요구를 이용하는 화장품 회사의 선전문구들이 여성들의 심리를 뒤흔듭니다. 보여지기 위한 전쟁, 누군가 나의 아름다움을 규정해주길 바라고, 고치고, 바르고, 조이고, 적셔가는 이 타자화의 과정이 무섭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외양보다 조금 더 아름다우면 될 화장은 위장의 기술이 됩니다. 끊임없이 타인의 평가에 시달립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삶과 내 얼굴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타인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건, 내 안에 ‘내 자신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고, 이때 외부를 통해 외적인 안정을 얻어야 하니까요. 도톰한 입술과 탄력 있는 목선, 미인의 첫째 조건 쇄골 뼈의 형상, 주름 없는 피부 남성이나 여성이나, 화장품 회사가 제조하고 유포하는 미의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포위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가 홍일화의 그림은 인위적인 아름다움과 미, 성형에 중독된 한국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아름다움이 권력이기에, 피부가 권력이기에 권력의 하층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적자생존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 바로 성형이지요. 피부도 성형하고 눈/코/입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문제는 동양인의 신체구조에 서구미인형의 얼굴을 대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 비너스의 얼굴에 메스를 들어야 합니다. 나도 한번 ‘보톡스’를 눈가에 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가 ‘동안(baby face) 신드롬’에 빠지고, 성형을 통한 젊음의 획득이란 화두에 매몰된 이유가 뭘까, 거기엔 아직까지도 재정립하지 못한 ‘노년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년기’를 곧 인생의 은퇴기, 퇴물, 혹은 모든 자신의 자양분을 사회에 다 토해놓은 상태로 규정하는 작금의 비 이성적인 정서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젊음은 권력이고, 특권이며, 경쟁력이 되는 것이죠. 젊음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좋습니다. 단 문제는 노년에 대한 두려움,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철학조차도 실종되는 지금의 현실이 무서운 것이죠. 사회심리학 저널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와 소개합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란 질문에 대한 답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는 것’이었답니다. ● 신체적 젊음이나 경제력이 아닌 자기존중과 관리, 일상의 다양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소화하고 넘길 수 있는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말이에요. 쉽게 마음 씀씀이 정도라고 할까요? 저는 남자이지만 화장하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화장을 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외양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다는 뜻이 아닐까요?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지각하되, 약점을 가리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 자신의 신체조건에 대해 감사하고, 이렇게 빚어진 자신에게, 내가 세상에 적응하도록 ‘신이 빚어낸 최적의 조합’이라고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얼굴에 대한 사랑이, 몸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온건한 나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믿어보세요. <김홍기 평론>

– 장소 : 갤러리 예동
– 일시 : 2014. 7. 19 – 8. 3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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