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닐곱 살 무렵 어느 여름, 버스를 타고 해운대를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가로수와 함께 한 참 동안 바다가 이어져 보였다. 멀미를 할 때쯤이면 해운대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해운대는 지금과는 다르게 주변에 건물도 별로 없고 넓은 백사장을 가진 수수한 느낌의 해수욕장이었다. 그 때 그 느낌을 가끔 현재의 청사포에서 느낀다. 화려한 달맞이 길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바로 청사포다. 이 곳에 있는 갤러리 아트숲을 방문 할 때면 어릴 적 해운대에 왔던 추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갤러리 아트숲에서는 김소영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다. 전시 주제는 ‘Talkative’. 작가는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시 주제인 ‘말이 많은, Talkative’에서 암시하듯이 세상의 힘 있는 사람들 보다는 누군가의 격려와 도움이 필요한 소수의 목소리들을 대변하려는 의미를 이번 전시에 담았다.
갤러리 벽면에 Talkative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여러 형태로 보여 지는 작가의 작품은 의미 없는 말로 의미 없이 속닥이는 수다와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스토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스토리의 구체성은 알 수 없지만, 절절함은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를 통해 수도 없이 드러나며, 추상화되고 변형된 모습을 통해 그 너머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다.’
전시장에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발 설치작품이 하늘거린다. 명주 천에는 동그란 무늬, 손이나 발 등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바닥에는 인체 모형의 천 인형들이 포개져서 의자를 만들고 있다. 이 의자에는 관객들이 직접 앉아도 된다. 약간의 무거운 전시 주제와는 별개로 관객들이 와서 만지고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숙한 공간으로 꾸몄다. 인체의 모형들은 아크릴 투명 상자 안에 있기도 하고, 천장에 매달리거나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다. 비록 알록달록한 무늬 옷을 입고 있지만 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모습에서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느꼈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들에 관심을 가진다. 남들은 굳이 문제 삼지 않는 평범하고 지루한 삶. 스쳐 지나가기 일쑤인 일상과 함께 하는 자연.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 역시 무언가를 발언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귀를 쫑긋 세워 들을라치면 대게는 무의미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다시 한 발 떨어져 전체를 관망하다보면 무의미하게 들렸던 반복된 이야기들 속에서 어렴풋이 절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수많은 존재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작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가 말이다.』<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사 평론글 중에서>
전시장에서 만난 김소영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 힘든 사람들의 삶을 표현 해 왔지만 이번 갤러리 아트숲의 전시장 구조를 보고 재미있는 것을 연출 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발 설치작품을 통해 살짝 보이기도 하고 또 가려지기도 하는 공간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만져도 보고 앉아도 볼 수 있는 체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너무나 결핍된 우리의 자화상을 통해 따뜻한 온기를 엮어보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이번 전시는 9월 6일까지 갤러리 아트숲에서 계속된다.
– 장소 : 갤러리 아트숲
– 일시 : 2014. 8. 7 –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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