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락동에 있는 티엘갤러리는 2013년도 말 개관 후 그동안 공공미술과 디자인이란 특성화된 주제로 전시를 해오고 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한국화 작품 활동을 해 온 구본호 작가가 관장을 맡으면서 그동안 ‘방시’, ‘스트리트 퍼니츠’, ‘양서류가 본 시각’ 등의 전시를 기획 해 왔다.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티엘갤러리는 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도시의 계단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을 위해 구본호 관장은 김찬수 작가와 함께 올 해 초부터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했다. 김찬수 작가는 어릴 적 안창마을에서 자라고 느낀 감정을 되살리면서 현재 부산 각 지역의 산복도로와 계단을 파인더에 담아 왔다.
갤러리에서 김찬수 작가를 만났다. 상업광고를 시작으로 요즘은 미술작품 촬영과 다큐멘터리 촬영 등을 하고 있다. 작가는 필름 카메라를 고집 해 오고 있고 아직도 작업실의 암실에서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도 직접 인화를 한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어두운 암실에서 정확한 초점 작업을 하는 것이 힘들어 졌다는 것이다. 몸의 노화는 누구도 피하기 힘든가 보다. “이번 전시는 인화가 아닌 출력을 한 것입니다. 필름을 스캔 해서 파일로 만들어 출력 한 것이죠. 작품을 잘 보시면 거친 입자들이 보이죠? 디지털 사진과는 다른 현상입니다. 디지털 사진은 어떻게 보면 건조한 느낌이죠.”라고 설명한다.
갤러리에 걸려있는 작품들에는 거칠고 투박한 계단들이 들어 있다. 주로 산복도로에서 촬영한 계단이다. 때로는 위에서 아래를 보고, 또는 아래에서 위를 보고 촬영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인 망양로와 엄광로, 대티로 등이 주 배경이다. 대다수의 산복도로 계단은 가파르다. 위에서 보면 때론 아찔하기까지 하다. 하필이면 그런 곳에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산복도로 계단에 넌더리가 난 젊은이들은 이 동네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복도로 계단은 거기에 사는 어르신들과 함께 가파르게 남아있다.
『전쟁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판자촌에서 시작된 남루하고 초라한 집, 수평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과 수직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계단들은 산등성을 따라 빼곡히 이어졌다. 마치 우리의 몸에 있는 핏줄과 같아서 산동네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을 한다. 이런 부산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산의 복판을 가로질러 고개를 이어준 것이 산복도로다. 허브 같은 심장이 생겨났던 것이다. ‘신작로’라는 새로운 길이다. 산복도로는 귀환동포와 피난민들이 형성한 산동네를 이어주는 가교가 된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도로라고 할 수 있다.』 <구본호 관장의 전시서문 중에서>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계획을 통해 산복도로를 기점으로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산복도로에서 아래를 내려 보는 풍경은 부산항이 보이는 풍경이지만 한때는 망향의 장소였다. 구본호 관장은 “산복도로는 망향을 그리는,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삶의 고된 현장, 부유의 상징인 산복도로 아랫마을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변해가고 있는 부산의 산복도로의 의경을 계단을 통해 남기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이번 김찬수 작가의 ‘산복도로 계단과 삶의 무늬’전을 통해 산복도로가 가진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고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다.
– 장소 : 티엘갤러리
– 일시 : 2014. 6. 27 –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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