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막 피려는 때,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청사포에 있는 갤러리 아트숲을 가기 위해 달맞이 고개를 넘어 가면서 본 바다는 뿌연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연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한 쪽에선 예비 신혼부부 촬영을 하고 있다. 오늘도 이곳에선 여러 추억들이 새록새록 새겨지고 있었다. 더불어 달맞이 고개와 인근에 있는 갤러리들은 봄을 맞으며 여러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오랜만에 갤러리 아트숲을 방문했다. 비가 오는 휴일임에도 문칠암 작가는 갤러리에 먼저 나와 있었다. 외관상 전혀 못 느꼈으나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문칠암 작가는 부산의 중견 작가이면서 한국미술협회 서양화2분과 위원장을 맡으면서 중앙 쪽 일도 하고 있다. 최근 서울과 부산을 자주 오가면서 여러 사업들을 챙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전시 준비를 했는데 이번엔 꽃을 주제로 삼아 ‘blossom’展을 펼치고 있다.
전시장 안은 은은한 꽃의 향연이 열리고 있었다.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냥 꽃들이 만발 해 있다. 그동안의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평면보다 오브제에 대한 관심이다. 두꺼운 캔버스 중간에 일정 규모의 공간을 만들고 굵은 나뭇가지를 세우거나 눕혀 놓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실제 나무다. 일부 작품은 나뭇가지와 캔버스가 연결되어 있다. 즉 나뭇가지 끝 부분이 캔버스와 닿은 곳에 작가는 붓으로 가지 끝을 이어 나갔다. “이번 전시의 특징입니다. 그동안 평면만을 고집하다가 이번에 오브제 쪽을 강조 해 봤습니다. 다음 전시는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다음 전시는 나뭇가지가 캔버스 밖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산을 자주 다녀야겠죠. 그리고 제 작업 의도에 적합한 나뭇가지를 찾아야 할 겁니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나무를 자를 순 없잖아요…”
작가는 아직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진행형’이다. 현재에 머무르기 보다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험한다.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이미지는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형상을 유지하면서 추상적인 표현을 병행했다. 그리고 늘 자연과의 호흡과 경이로움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나무의 한 부분을 캔버스에 직접 넣는 시도를 했다. 어쩌면 그가 그리고 싶은 자연의 한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일상의 모든 상황들이 큰 벽으로 다가 올 때면 언제나 뚜렷한 목적지가 없는 나 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깊은 병이 있다. 어깨를 짓누르는 근심을 내려놓는 순간, 세상은 나의 편이 된다. 이름 모를 곳의 노을이 짙게 드리우면, 시골장터의 찌그러진 막걸리 잔엔 그리움으로 가슴 미어지게 하는 이들의 얼굴들이 비쳐진다. 어느덧 현실로 돌아온 일상의 캔버스에는 나의 삶에 동행하는 수많은 이들과의 희로애락이 꽃의 이름을 빌어 다시 기록되어진다. 채움과 비움의 반복을 통한 무모한 대상의 추적은 결과적으로 순수한 조형성을 바탕으로 한 추상적 화면으로 귀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 노트 중에서>
빗방울이 갤러리 창가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청사포에서 작가와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소탈하고 정감 있는 작가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속 꽃잎 하나하나에 그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도 이번 개인전을 위해 애를 많이 쓴 것 같다. 이번 전시 주제는 ‘꽃’이다. 꽃은 1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 그리곤 가장 화려한 시기가 지나면 또 다음을 위해 스스로 떨어진다. 어쩌면 문칠암 작가도 이러한 절박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유한하고, 계절은 돌고 돈다. 작가는 지금 꼭 하고 싶은 말들을 지인들에게,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 삶의 정겨운 이야기,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 장소 : 갤러리 아트숲
– 일시 : 2014. 3. 21 –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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