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을 들어서면 다양한 크기의 풍경화들이 관객을 반긴다. 유화로 그려진 작품들에서 한국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캔버스 속 여러 요소들이 물고기들로 이루어졌다. 물고기가 꽃잎, 줄기, 숲이 되고 공기의 흐름도 만든다. 풍경화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 속에 어느덧 물고기의 유영으로 인해 시공간을 느끼게 해 준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부분은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컴퓨터 자판 알맹이들이다. 작가는 왜 작품 속에 물고기와 컴퓨터 자판을 그려 넣었을까?
“이번 전시에는 자연의 영원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소멸하며 끝없는 순환을 반복합니다. 그러한 자연에 대해 현대 과학의 발전은 우려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 작품 속에는 물고기가 자연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에서의 시간에 대한 움직임을 물고기의 움직임으로 시각화 했습니다. 키보드는 자연과 과학의 조화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자연을 위한 과학이 되길 원하는 저의 염원을 담았습니다.”
작품 ‘화분Ⅰ’에서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 대가리와 등뼈 사이에 뻗어난 가지 사이에 작은 물고기들이 잎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태어난 고향을 떠났다가 산란기다 다가오면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죽은 물고기와 산 물고기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하늘을 떠다니는 물고기, 컴퓨터 자판 위에 쉬고 있는 북극 곰, 꽃잎에서 나와 빗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에서 비상식적이지만 상식적인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생각을 유추 해 볼 수 있다.
작품 ‘나무 生’은 좀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속에서 올라 온 굵은 나무줄기에 ‘물고기 잎’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무, 물, 달 등 정적인 장면에서 ‘물고기 잎’은 공기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에서도 현대과학을 의미하는 컴퓨터 자판이 축대의 구조로 표현되었다. 작품에서 컴퓨터 자판은 돌, 자갈, 빙하 등으로 형상화 된다.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의 이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자연의 신비와 호기심, 조화로운 자연에 대한 염원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작품의 형식에 부여되는 의미는 작가의 의식을 규정짓지는 못한다. 박영수에게 작품의 형식은 내용을 미학적으로 좀 더 풍부하게 할 목적을 가졌다. 그런 까닭에 그의 많은 작품들에는 작은 물고기에서 큰 고래까지, 가히 물고기 범벅이다. 숲에도, 빙산이 떠다니는 극지에도, 창밖에도, 화분에도 생명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행위로 물고기는 역동적으로 장치되어 있다. 개별성과 사회성이 서로 간섭하거나 충돌하지 않고 소통적이다. 심지어는 나무 곁에 서 있는 한 아이를 물고기들이 선회하면서 둘러싼다. 홍안의 동화적 생김새의 아이는 바로 작가 자신의 내면이다. 서로를 옭아매는 세상과 거리가 먼 아이는 꽃보다 아름답고 순수하다. 작가는 이 아이의 얼굴로 세상과 마주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진흙처럼 누추한 것이 아니라 유리처럼 명징한 세상을 누대에 걸쳐 전해주어야 할 의무감이 있다. 그게 작가가 말하는 온당한 생명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진실인 것이다.』<조해운, 작품 평론 중에서>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첫 개인전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소 긴장되어 보였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와 대화하면서 이번 전시에 대한 소회와 그동안의 연륜으로 인한 화폭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늦깎이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박영수 작가의 제 2의 인생 시작을 응원하며 다음 전시도 기대 해 본다.
– 장소 : 해운대아트센터
– 일시 : 2014. 3. 18 –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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