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동 문화마을은 2009년도부터 조성하여 지금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대표적 산복도로 마을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정착한 사람들 일부는 현재까지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부산에 여기 못지않은 또 다른 유명한 산복도로 마을이 있다. 영주동 민주공원부터 시작하여 초량동, 수정동, 범일동까지 이어지는 산복도로 마을이다. 산복도로 마을은 서대신동에서 시작되는 망양로를 따라 이어지는데, 한때는 이 망양로가 서구와 부산진구를 이어주는 주요 간선도로였다. 최근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관광자원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망양로 산복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초량동 중간쯤에 ‘유치환의 우체통’이 있다. 2층 건물이지만 도로에서 보면 건물의 옥상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옥상 끝 중간에는 커다란 우체통이 있다. 실제 이 우체통은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 편지를 넣으면 1년 뒤 수취인에게 배달된다. ‘유치환의 우체통’ 2층 ‘시인의 방’에서는 주경업 작가의 14번째 펜화전 ‘산복도로 사람들 이바구’를 전시하고 있다. 주경업 작가는 부산의 원로 향토사학자이며 화가이다.
칠순을 훌쩍 넘긴 노 작가는 전시기간 중 주말 오후에는 자리를 지키고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역 문화현장을 답사하고 인터뷰를 해 온 작가를 일컬어 ‘부산문화의 파수꾼’이라 부르기도 한다. 작가는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구수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글을 적기도 한다.
“주 선생님, 이 전시를 위해 오랫동안 산복도로 마을을 답사하셨는데, 평지에서 이 높은 곳까지 오르락내리락 하시면 힘들지 않으신지요?”
“저는 지금까지 웬만한 거리는 걸어 온 사람입니다. 차도 없어요. 아직 걷는 데는 자신 있습니다.”
작가는 산복도로 조성 역사부터 당시 풍경, 에피소드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산 사투리에 깊은 정감이 느껴진다.
작가의 부산 사투리에 대한 사랑은 이번 전시의 작품 제목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계단에 앉아 있는 남자는 “뭐라카노. 내사마 바빠 죽겠거마”라고 중얼거리고 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그래, 니 잘 만났다”라며 상대방 아주머니를 째려본다. 하지만 상대 아주머니는 종이 계란판을 깔고 앉아 딴 곳을 쳐다본다. 계단을 오르던 할머니는 계단 턱에 앉으며 “하모, 쉬어가야제. 무신 일이 바뿐기 있따고”라며 거친 숨을 고르고 호떡을 굽는 주인장에게 누군가 “할매요! 홋떡 얼맹기요”라고 묻는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새로 단장한 블록집 담장 곁에 매달려 있는
슬레트 지붕이 을씨년스레 보이지만,
내 널린 빨래들에서 사람냄새를 풍긴다.
개구쟁이들이 뛰어 놀았음직한 골목 고샅은 썰렁하니 비어있고
노친네들 지팽이 소리만 또닥또닥 들린다.
삶에 지치고 힘겹게만 보이는
이들의 무거운 걸음에서
산복도로의 자화상을 본다.』<작가 노트중에서>
작가는 화가이면서 지역답사 전문가다. 부산과 경남의 여러 문화예술인들을 취재하여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장기간 연재 해 왔다. 작가는 아직도 산복도로를 수시로 걸어 다니며 관찰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형적 변화와 연로 해 가는 주민들의 애환과 세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번 전시는 3월 16일까지 계속된다.
– 장소 : 부산 초량 산복도로 ‘유치환의 우체통’ 2층
– 일시 : 2014. 1. 14 –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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