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이란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 오랜 관습처럼 내려오던, 하지만 그러한 틀에 맞춰 살아 갈 때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유지한다. 미술 분야도 그렇다. 개인전을 열기 위해선 대학교를 졸업하고(작가가 되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원을 진학한다.) 꾸준한 작업과정을 통해 일정 기간이 지나야 했고, 또 그것이 다수 작가들이 밟고 있는 과정이기도 했다.
해운대에 있는 K 갤러리에서 전시소식을 보내왔다. 작가 약력을 보니 현재 대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대학교 4학년이면 졸업 작품전을 위해 문화회관이나 대관전문 미술관에서 할 법한데, 일반 화랑에서 개인전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저런 궁금증을 품고 K 갤러리를 방문 한 날은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주말 오후였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K 갤러리는 비록 그리 넓지 않지만 작은 정원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곳이다. 특이한 것은 고양이를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어,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마치 제 집인 냥 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K 갤러리의 전시 경향은 다른 갤러리와 차별성이 있다. 대내외적으로 이름 난 작가보다는 신진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얼마 전 전시를 한 임청훈 작가 때도 그랬지만 이번 전시 역시 이제 막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려는 신인 작가 전시회였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제법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대학교 4학년 학생으로서 작업을 하기에는 작품 수가 꽤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 속에 선인장이 그려져 있다. 빙하가 보이는 곳에서, 거실, 침대, 의자, 소파 위에도 어김없이 선인장이 놓여 져 있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 예측하지 못한 소재가 놓여 있는 셈이다. 선인장은 사막 지역에서 수분이 나가지 못하도록 잎이 가시의 형태로 변한 ‘생존본능의 진화적 산물’이다. 이러한 선인장이 생뚱맞게도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곳곳에 놓여져, 그것도 크게 자라고 있다.
“이번 작품의 시작은 유토피아입니다. 유토피아는 인류가 꿈꾸고 지향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그토록 원하던 유토피아에 도달했을 때 거기서 만족을 할까요? 인간은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게 될 겁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시각적 대상과 새로운 공간의 결합을 통해 의문을 던지고, 과연 더 나은 세계로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 해 보자는 것이 제 작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최지현 작가는 이러한 ‘선인장 프로젝트(Cactus Project)’를 2년 전부터 생각하고 작업을 해 왔다. 그렇다고 선인장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낯선 환경에 접목하고 있는 대상이 선인장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사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토피아와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의 고민, 그 과정을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인간의 욕구는 더 풍족한 내일을 위한 것이고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을 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제 막 전업 작가로의 첫 발은 내디딘 최지현 작가는 비록 2년 전부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꾸준하고 다양하게 준비한 흔적이 보인다. 유화와 아크릴 작업 외에도 실크스크린, 종이판화 작품도 여러 점 전시하고 있다. 특히 종이판화 작품은 동판화나 목판화와는 다른 번짐 효과가 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20대의 최지현 작가가 고민한 인간의 욕망과 유토피아에 대한 사색이 어떤 방향으로 깊이를 더 할지 주목 해 본다. 또한 이러한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K 갤러리가 나오길 바란다.
– 장소 : K 갤러리
– 일시 : 2013. 12. 5 –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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