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알바트로스가 날개를 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법인데 알바트로스는 높이 나는 새의 한 부류다. 여기 알바트로스처럼 높이 날고 넓게 보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작가를 소개한다. 그는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판화와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까지 현대적 학문 트랜드인 통섭과 융합의 예술을 시도하는 임청훈 작가이다.
부산 해운대에 있는 K갤러리는 자신의 색을 처음으로 관객에게 드러내는 새내기 작가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가끔 전문 갤러리에서 신진 작가 등용을 위한 기획전을 하고 있지만 상업적인 부분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갤러리 입장에서는 약간의 모험성이 뒤따른다. 반대로 신진 작가들에게는 전문 갤러리를 통해 등용하는 것은 장차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된다. 부산에 있는 몇 몇 갤러리에서 이처럼 신진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임청훈 작가의 첫 인상은 밝고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학부과정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는데, 짧은 석사과정 동안 밀도 있게 여러 분야를 공부했다. 판화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에 최근 전문 작가 수가 줄 뿐만 아니라 대학 전공분야도 축소되고 있다. 작가는 판화를 처음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기초부터 배워나갔고 판화 분야를 타 매체와 결합하여 현대적 표현 방식으로 이번 전시에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서 본 작품들은 첫 느낌이 독특했다. 먼저 색상이 기존 회화와 달랐고 사진 같은 분위기지만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이미지 위에 녹슨 철 조각도 붙여져 있다. 군데군데 페인팅의 흔적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디지털 이미지 위에 판화작업을 한 후에 페인팅과 녹슨 철 조각을 붙이는 콜라주까지 동원됐다. ‘끈기 있게 지속하라’라는 작품은 컨테이너 박스 사이를 통해 뻗어나는 빛의 느낌까지 살린 디테일한 작업방식에 공이 많이 든 작품임이 느껴진다.
임청훈 작가의 작품에는 제목이 함축성을 띠고 있다. ‘끈기 있게 지속하라’, ‘길을 찾아가다’, ‘공간 감각’, ‘기다리다’, ‘알 수 없다’, ‘다가가다’, ‘마음의 재구성’ 등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나타내려는 느낌을 제목으로 먼저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컨테이너, 오토바이, 열차, 숭례문, 부산의 야경 등은 희망, 갈망, 바람, 심경 등을 시각화 한 것인데, 작가는 이에 대해 “이미지 형성은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에 과거의 이미지는 현재의 이미지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으며, 현재의 이미지는 과거의 이미지와 더불어 추가로 수용된 정보로 형성된다.”라고 표현한다.
『도시가 사람들 개개인에게 주는 각각의 고정된 도시이미지가 아니라 도심 속 한옥을 배치함으로써 한옥이 주는 형용사적 의미 ‘차분한’, ‘느긋한’, ‘여유로운’, ‘화목한’, ‘시원한’, ‘널찍한’, ‘쾌적한’, ‘따뜻한’, ‘정겨운’, ‘자연스러운’의 이미지 등이 조화를 이루어 도시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라면서 작품을 제작한다.』<작가 노트 중에서>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긍정성과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컨테이너와 같이 딱딱하고 벽 같은 소재를 택배상자의 설렘과 기쁨으로 표현했고, 야경의 불빛을 통해 따뜻한 감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컨테이너에서 느끼는 감성, 횡단보도를 따라 가다보면 볼 수 있는 빛(희망), 빛이 주는 따뜻함, 축복의 느낌…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들 속에는 빛이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는 컨테이너 박스 표면에 ‘Dream Box’라고 크게 써 놓았다. 전통적 수공 판화기법과 현대적 판화기법을 통해 빛이 주는 따뜻함을 표현한 임청훈 작가의 전시는 해운대 K갤러리에서 11월 16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K갤러리
– 일시 : 2013. 11. 7 –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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