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전시장 바닥에 작은 드럼통처럼 생긴 작품 두 점이 놓여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녹이 슬어 거친 표면을 하고 있고 전통국악기 장구의 북면에 해당하는 양 옆면은 살짝 들어간 형태다. 이 ‘path’ 란 작품 중 한 작품은 표면이 자연스럽게 녹이 슨 질감을 유지하고 또 한 작품은 살짝 윤이 난다. 윤이 나는 작품은 왁스를 발라 더 이상 부식이 진행하지 않도록 처리했다고 한다. 전시장에 놓여 진 철 작품들은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시간과 공간이 함께 축적되어 있다. 김정락 교수는 이 노 작가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존재하는 조각’이란 표현으로 함축한다.

해운대에 있는 갤러리데이트에서 최인수 작가의 ‘오롯이 존재하는 조각(The sculpture which exists perfectly)’展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장 바닥에는 ‘굴린 작품’이 두 점 있고, 철 작품이 세 점, 페인팅 작품이 두 점 보인다. 작가가 굴리는 작업을 시작한지는 20년 쯤 됐는데 그동안 형태적으로 길거나 짧게, 부피가 크거나 작게 또는 사각형 덩어리 형태의 작품도 있었다. 굴린 작업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는 작가의 신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가의 신체 사이즈와 작가가 손으로 소화할 만큼의 부피, 물질이 허락할 만큼의 사이즈로 만들어질 때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작품으로 탄생한다고 한다. 이 굴린 작업이 작가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계절에 따라 다른 작업을 한다고 한다. 흙덩이를 굴리는 작업은 겨울에 작업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로 따뜻한 시기에 작업을 한다. 겨울철에는 철 파이프, 드로잉, 종이오리기 등의 작업을 한다. 굴리는 작업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덩어리가 아니면서도 부피를 차지하는 작품으로는 ‘on it’과 ‘그것으로부터’라는 작품이 있다. 철 조각을 잘라 붙인 이 작품들은 모두 이어져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on it’이란 작품은 직경 22센티미터, 두께 4센티미터의 철 파이프를 잘라서 올렸는데 작가 신체와의 대화를 통해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진 것이다.

『‘조각이 말하게 한다. 그리고 듣는다.’
최인수의 사유는 깊고 무겁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작품으로 보는 우리를 짓누르거나, 사유의 미로 속으로 구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양상 명상적인 조각의 형태를 지닌 듯 보이지만 철학의 명분과 체면을 추종하는 공허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언사는 유머러스하다. 모더니즘의 엄격하고 근엄했던 형상성에서 탈출구를 마련했다는 점이 최인수의 작업을 쉽게 인지되고 또한 깊게 사유하게 만든다.』<김정락 교수 평론 중에서>

전시장 한 쪽 벽면에 붙여진 아크릴 페인팅 작품인 ‘씨앗은 자란다 느리고 빠르게’는 장마철에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물감을 칠한 후 하루 정도 지나면 이런 형태가 나온다고 한다. 작가는 작품제작에 참여를 하지만 완성의 여지를 자연과 그 외의 것들에 맡겨 둔 것이다. 작가는 자연의 섭리로 만들어진 이런 작품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칠순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번이 부산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인 최인수 작가의 전시회는 갤러리데이트에서 11월 24일까지 계속된다.

– 장소 : 갤러리데이트
– 일시 : 2013. 10. 25 –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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