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내 작업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대한 탐구와 치유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공간을 넘으며 이어온 인간의 욕망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지만, 그 공통점은 언제나 잉여적인 것이다.
과거의 욕망과 그 대상이 단편적이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다 복잡한 욕망의 출구와 대상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욕망이다. 오늘의 우리는 없어도 되는 나머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통적 가치를 이어서 내려오던 사회의 이상향이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는 개인의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다르게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새로운 욕망과 관습은 완전히 채워질 수도 정형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 가치관에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융합하고 접목하여도 결국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키덜트적 유희를 통한 현대인의 치유를 기대한다.
현대는 과학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다양한 정보가 무한 전파된다. 새로운 무언가가 생산되고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변화가 다가온다.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빠르게 디지털화되어가는 현실과 목표를 잃어버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지치게 되고,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때로는 이런 우리에게 현실이 아닌 과거의 추억과 유토피아적 이상향이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내 작품에 드러나는 캐릭터들은 사회가 강요하는 일반적 욕망의 대상이 아닌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소재이다. 이는 어른다움이 아닌 천진난만한 상상력과 동심을 모티브로 하여 표현된다.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유희의 문화이자 치유의 역할을 하는 소재들은 동시에 키덜티즘의 사회적 현상을 전달한다. Kidult(키덜트)는 아이를 뜻하는 kid(키드)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어덜트)의 합성어로 어른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행동을 동경하는 성인들을 의미한다.
키덜트 문화의 특징은 진지하고 무거운 것보다 재미있고 유치한 것에 중점을 두며, 본질적으로 인간의 유희를 위한 것임에 있다. 유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시기로 돌아가려는 욕구이다. 키덜트적 유희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동화나 환상의 세계에 잠시나마 빠지면 고갈되고 메마른 정서에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현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나이나 지위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유로운 인간, 유희하는 인간임을 자각하게 해준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욕망의 소재들과 희망을 기대하는 캐릭터 및 현대의 경쾌한 소재들이 병치 되며 이는 욕망의 이면에 있는 동심의 기억들을 꺼내도록 유도된다.
우리는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벗어나 가끔은 상상 속의 유토피아와 친숙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안정을 찾곤 한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작품 속 캐릭터는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움이 있는 그러한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내 작업은 비단 위에 색을 반복하여 올리고 기다리며 다시 올리는 수많은 시간의 중첩이 필요하다. 인간의 추억이 살아온 과정을 기록한 여러 페이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욕망과 치유의 소재들을 기록하고 중첩시키는 과정을 통해 흐릿한 동심의 기억과 현대인의 유희적 욕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전통채색을 바탕으로 한 아날로그적 작업과 현대적인 디지털 작업의 융합으로 완성된다.
현대는 언제나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을 마주하게 되고 과거는 흐릿하고 느리며 여유롭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이루는 평온함과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을 상상 속에서 또는 동심에서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키덜트의 천진난만하고 즐거운 현대적 유희에 아날로그적 작업을 통해 감성을 담아내는 작업은 나에게는 빠른 일상에서 느린 행복을 찾는 시작점이다. 모두에게 지친 하루를 달래고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평온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소망한다.//이지현//
장소 : 갤러리 마레
일시 : 2023. 07. 01. –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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