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걸展(금샘미술관)_20230606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상을 봅니다. 나는 결코 다른 이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보았다고 믿고, 혹은 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며 공감하려고 노력 할 뿐입니다. 우리의 세상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빛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의 표면과 만났을 때, 파장이 다른 빛을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색’이 발현됩니다. 그러나 색은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눈과 뇌에서 느끼는 합성된 감각으로 그 순간에 발현되는 것일 뿐 물체 고유의 성질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색은 그것을 감각하는 주체에 따라, 또 그 순간의 현상에 따라 다르게 감각될 수 있는, 고정되지 않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색의 주인은 그 물체일까요, 그것을 감각하는 주체일까요. 인상주의의 화가들은 바로 이러한 색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빛과 파장의 차이를 구별해서 색을 구분하는 감각을 색각(color sense)이라고 합니다. 이민걸 작가님의 작품에는 특별한 색각이 존재합니다. 작가님의 세상에서는 다른 이의 시각과 가장 비슷하게 공명할 수 있는 형(形)이 바로 그것입니다. 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작가님의 감각으로 발현된 ‘순간의 색’들이 접촉한 물체의 형(形)으로 자신의 색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복잡한 뿌리의 형태로, 혹은 주인인 사슴의 한 부분인 뿔로, 때로는 자신만의 색의 몸을 가졌지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몸을 변형시켰던 사명체로, 모두에게 공인된 기본 형인 원, 반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드러난 색의 형(形)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늘 가지고 다닙니다.

칼 융(Carl Gustav Jung)은 그림자 원형은 성격의 ‘어두운 면’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거부하고 인정할 수 없는 자신, 즉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묻힌 부분이 ‘그림자’라고 것입니다. 융은 ‘인간은 빛의 형체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의식을 만듦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림자를 통해 드러나는 내 존재의 깊은 곳을 인지하고 그것을 마주볼 때 진정한 자신을 인정하고 바라보며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그림자는 그것을 억압하고자 할 때 숨기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본질을 감춘 다른 형(形)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에서 새싹이 드러난 것은 바로 이때문은 아닐까요?
빛이 있으면 색이 드러나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빛과 그림자는 작품의 숙명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작가님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빛을 이용해서 작품의 형(形)을 감추거나 드러내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작품의 그림자가 ’너무 이쁘지 않아요?‘라고 제게 말씀 하셨지요. 저는 작가님의 그 말씀이 마치 융이 말한 자신의 ’그림자‘를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자‘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색각은 아니었을까요. 내가 가진 색각이 당연한 내 감각의 일부인 것처럼 나의 작품의 그림자 역시 당연한 작품의 일부가 되길 바란 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회에서 정의 내린 색과 ‘내가 감각하는 색’의 다름을 함께 묶어내듯 자연물과 인공물을 클램프로 묶어 ‘형(形)’을 표현하던 작품들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나의 색’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심한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그 형(形)를 담은 공간과 매체가,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오브제가 마치 주인인 것처럼 드러나지만, 색의 형(形)들은 점차 ‘갇혀진 형(形)’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유연한 형(形)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새싹의 뿌리가 삼각형, 사각형, 원형의 형틀에 갇혀 있다가 자유로운 형으로 변형되며 공간의 주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 작품에서 작가님은 고유한 색각을 형(形)이 아닌 ‘색(色)’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님이 가진 고유한 색각의 형(形)이기도 합니다. 그 색들은 유한합니다. 한 번 만들어진 후에는 다시 똑같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색들은 나와 너, 모두에게 다르게 읽힐 것입니다. 우리는 색의 본질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색은 모두 합쳐져 하나의 빛으로만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색을, 그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보는 색은 늘 유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그 순간의 빛이기에 그렇습니다.

작가님의 세상의 아름다운 빛(色)이 앞으로의 작업에서 작가님만의 고유한 색각의 형(形)으로 자유로이 드러나게 되기를 응원합니다.//미술치료사 이지현//

장소 : 금샘미술관 제3전시실
일시 : 2023. 06. 06. –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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