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중展(해오름 갤러리)_20230501

//작품 설명//
나의 최근 작품들은 자작나무 합판을 집성하여
조각을 하는데
원목과는 다르게 갈라지거나 터지는 일이 없고
뒤틀림과 수축/팽창이 적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합판은 층층마다 결이 다르고 단단하여
조각하기가 까다롭고 제작 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작품이 완성됐을 때
볼륨에 따라 변화하면서 반복적인 결들이 드러나는데
이 곡선의 결들이 갖는 리듬감과
시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결들의 하모니와 느낌이 좋고
또 여러 결들이 모여 하나의 볼륨을 이루는 것이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緣起法) 같아
자작나무 합판조각을 계속하고 있다.

나의 작품은 크게 비구상작품들과
인체의 형태를 가진 구상작품들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깨달음에 관심이 많아
비구상 작품들은
모든 사물의 현실적인 모습을 구성하는 기(氣)와
모든 사물의 존재와 생성에 관련된 절대적인 원리와 법칙
또는 이치를 표현하려 했으며
구상작품들은 현상계에 드러난
Doing의 상태보다는 Being의 상태를 표현하려 했다.//이한중//

//작가 노트//
내 작품들에 대한 명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묻곤 한다.
나는 내 작품들을 통해서 내가 이야기하고, 묻고 싶은 것들이
어떠한 말로 한정 지어서 특정한 범위 안에 가둘 수 없고,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것’과는 더 멀어져 버리며,
모습이 없고 이름 지을 수 없는 ‘이것’을 억지로 표현하려다 보니
명제를 달지 못하고 숫자로만 작품들을 구분 짓게 되었다.
또 나는 나의 작품들을 통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걷게 하며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고 수면 중에 꿈꾸게 하는 이것,
이 모든 것들을 인식하는 이것, 세상의 모든 변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고
항상 여여(如如)하며 모든 것을 변화케 하는 ‘이것’을
나는 이야기 하고 묻고 싶은 것이다.

바람은 그냥 기압 차이에 의해 공기 중의 이물질들의 움직임을
우리는 바람이라 칭할 뿐,
바람이라는 따로 떨어진 고유의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에게 거울을 그려보라고 하면,
거울에 비쳐진 사물이나 풍경, 빛의 반사나 테두리만 표현할 뿐,
비춰진 내용물을 제외한 순수한 거울은 표현할 수 없고,
대상들의 비춤이 없는 거울은 또 거울이라 할 수 없다.
빛도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물질이 없고 오로지 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빛이 밝다거나 어둡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단지 빛에 의해 빛을 반사하는 이물질들의 반사정도에 따라
서로 비교하여 밝다거나 어둡다고 말할 뿐이다.
빛을 반사하는 물질들이 하나도 없고 그냥 빛만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빛을 깜깜하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파도와 바다를 떼어 놓을 수 없듯,
내가 없으면 대상은 있어도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대상이 되는
그 무엇이 없으면 있다거나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결국 그들은 하나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익힌 수많은 구분지음과 거짓된 추측과 주장들로 인해
진실과는 아득히 멀어져 버렸다.
세상사 ‘새옹지마 (塞翁之馬)’라고 다음 순간 어떻게 될지, 어디로 흘러갈지,
이 상황이 나중에 가서 자신에게 덕이 될지 해가 되어 다가올지를 우린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에만 집착하여 이러니저러니 하며 조작하여 수많은 오류들을 낳고 있다.
그 동안 배워온 세상의 얄팍한 지식이나 짐작,
선 지식인이나 조사들의 글을 읽고 하는 이해와 앎으로는
‘여기’에 다가갈 수 없다.
이름 지어져 있고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가 망상일 뿐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각, 행위의 애씀으로는
이 진실에 다가갈 어떠한 특별한 방법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이 진실과 통할 수 있다.
높은 지위와 많은 부를 쌓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깨침 없이 우리의 한 생이 다하여
마지막 숨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지난 온 삶에 대해 어찌 후회 없음을 인식할 수 있을까?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깨쳐야 한다.
당장의 한 끼니와 잠 잘 자리가 필요한 이들이 있고
일자리가 중요한 이들도 있으며
부와 명성을 목표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나에겐 유년 시절부터 이 일이 더 중요했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으로 추측할 수 없고 논리로 정리되지 않으며
보이거나 감각하고 지각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깨달아 통할 수는 있는 ‘여기’에 대해 나는 이야기 하고 묻고 싶은 것이다.
한번만이라도 ‘이것’을 직접 경험해 본다면,
과거 몇 천 년 동안 우리가 성인군자라 칭하는 이들이 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그저 그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사용되어진 방편일 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마치 장님이 눈뜬 것처럼…
‘이것’은 모든 것들을 포함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 난 적이 없으며
벗어날 수도 없는 세상 모든 것들의 합이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을 조작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이것’만은 우리의 어떠한 수고와 애씀으로도 조작하거나
어찌 해 볼 수 없으며,
대상화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또한 이것은 날것이다.
어떠한 생각이나 관념,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순수하고 싱싱한 날것이다.

여기를 한번이라도 직접 통한 이 라면
이후로는 익숙지 않은 여기에 적응되어짐이 남는다.
아무 일이 없는 무위일 뿐이다.//이한중//

장소 : 해오름 갤러리
일시 : 2023. 05. 01. –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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