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오展(리빈 갤러리)_20230209

//평론//
김연희(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 주임교수)

빠른 속도로 급격히 변모하는 현실 속에서 작가 박형오의 작품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그에게 이번 전시는 대단한 포부나 야심을 표명하기 위함이 아닌 지금까지의 작업과정을 정리하고 다음을 다짐하는 일종의 자아성찰(自我省察)의 의미를 두고 있다. ‘산다는 것’ 때론 땅에 딛고 서있는 것조차 서툴고 불편하기만 하여 순간 ‘다른 곳’을 상상케 하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 위에 서 있는 우리의 일상을 마치 자신의 일기처럼 작업을 통해 진솔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일상적 삶과 경험에서 일차적으로 출발하는 박형오의 작업은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실성에 의미를 부여한 리얼리티, 즉 사실적인 묘사로 충실하게 써 내려간 박형오 개인의 일기이자 사회적 초상이다.

일종의 예술적 매개체이자 치유인 조각을 통한 일상 속 몸의 발견은 영혼의 제스처이자 일상과 예술의 결합을 의미한다. 몸의 기억과 저장은 시간의 운명 안에 있으며 이것이 몸 자체가 시간과 더불어 생장과 소멸의 길을 가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몸이되, 결코 고정, 저장, 복제될 수 없는 각기 다른 몸이기에 박형오는 ‘리얼리티’ 라는 사실적 재현 방법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리얼리티(reality)란 사실성, 현실성을 뜻하는 말로써, ‘리얼리티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재현한 것이 마치 실제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박형오가 리얼리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현실성은 크게 물리적인 현실과 정신적인 현실로 나눠 볼 수 있다. 끈적끈적한 점토 덩어리를 한 점 한 점 떼어 붙이며 자생된 인체의 리얼리티는 물리적 현실로 생명력을 표현하였으며 작가의 인위적인 기교를 극소화하여 표현한 신체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관념적 현실 혹은 정서적 현실인 정신적인 현실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리얼리티로 관람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솜씨로 다양한 인체의 재현을 통해 바디스케이프(bodyscape) 즉 ‘인체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다면 몸을 소재로 한 박형오의 작업은 무엇을 재현하며, 무슨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부가 된 예술관, 인생관과 같은 각종 관념을 통해 표출된 총체적인 표상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

언제부턴가 박형오는 자신을 소재로 자신의 개인사적인 조건을 대변해주는 자소상(自塑像) 만들기를 통해 자신 찾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외면했던 진정한 나와의 대면이며 세상에 대한 직면이다. 그리고 자신과 세계 사이에서 발견하게 될 존재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며 내부와 외부, 개인과 집단, 자연과 문화, 주류와 비주류, 일시성과 영원성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가치체계 속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박형오는 그간의 전시를 통하여 인체의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은 필요한 부분의 몸을 과감하게 절단하고 흙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인체를 표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과감한 절단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만 무척이나 정겹고 따뜻하기 그지없는 인간미 넘치는 스토리가 담겨있다. 많은 작가들이 무수한 인체를 다양한 용도와 수단으로 작품에 이용한다. 박형오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품들도 흙으로 작업한 인체의 모습들인데, 지금까지의 작업들이 인체의 구조적 표현에 집중을 했다면 이번의 작업에서는 인체의 리얼리티를 통한 내면의 진실성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오늘날의 현대예술은 첨단매체의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예술 장르간의 벽을 해체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대 예술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형오의 연작들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흙이라는 재료의 원초적인 물질성과 인체형상에 준거한 모사와 손의 기교에 의한 전통적인 제작방법이 혹여 현대예술시대에 단순히 조각의 전통을 잇는다는 식상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흙이라는 원시적인 재료의 물질성에 관한 재발견과 전통 방법의 영역 확대의 시도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을 담은 우리시대의 표상이 되었으면 한다. 이전 작업에서도 그랬듯이 작가 박형오는 조각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일말의 소명의식과 함께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일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더욱 완숙한 작가의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김연희//

장소 : 리빈 갤러리
일시 : 2023. 02. 09. –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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