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展(미광화랑)_20221217

//전시평//
센스와 위트의 미술 세계 : 하일지(소설가, 시인, 화가)

박건의 공산품 아트는 경쾌하고 발랄하다. ‘망치반가사유상’이나 ‘세상의 기운’ 등, 그의 수많은 작품들의 첫 인상은 경쾌하고 발랄하다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즐거운 웃음이 흘러나온다. 바로 그 점이 박건 미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미술의 오랜 역사는 진지하고 근엄한 초상들로 가득 찬 낡은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굳이 종교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잘 만들어진(wlle made) 미술품들에서 우리는 작가의 진지성 앞에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미술의 오랜 권위를 일격에 파괴한 것은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단순한 공산품인 변기를 살롱에 갖다놓음으로써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센스와 위트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박건의 공산품 아트는 마르셀 뒤샹의 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시학’적 통념을 배반한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 격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통념, 스케일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 이런 것들을 배반한 자리에 박건 작품에서는 빛나는 센스와 위트가 있다. 지성의 최고 정점은 유머라는 점을 생각하면 박건 작품들 면면에서 우리는 지성을 느낄 수 있다.

박건은 그러나 뒤샹과는 다른 방법을 쓰고 있다. 뒤샹의 ‘샘’이 오브제의 장소이탈(dépaysement)이 불러일으킨 충격이었다면, 박건은 망치 위에 걸터앉은 반가사유상에서처럼 예상치 못한 서로 다른 오브제를 조합시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하면 ‘마스크 돈’에서는 또 지폐 위에 새겨진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얼굴에 마스크를 그려 넣음으로써 코로나 시대 인간의 삶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박건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오브제들이 마술에 걸린 것처럼 서로 결합하여 신선한 미술품으로 변신한다. 필통과 수세미가 여성의 성기로 둔갑하는가 하면 동전 무더기와 호두가 만나 남성의 성기로 변한다. 그 센스와 위트가 놀랍다.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면 그의 그런 작업에 대하여 “장난스럽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박건의 작품이 전하는 섬뜩한 메시지를 듣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퐁니퐁넛-베트남에서의 학살’이나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정치권력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있고, ‘개죽음’, ‘난파선’ 등에서는 인간존재의 위기 상황을 드러내고 있고, 그리고 ‘버자이너 모놀로그’나 ‘오르가즘 드라이브’ 등에서는 성적 강박관념에 억눌려 있는 우리를 통렬하게 비웃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건 작품은 그 하나하나가 은유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박건 미술의 은유성이 잘 드러나는 것은 90년대 청색 그림 연작들이다. ‘빈방’, ‘탁족도’, ‘까마귀’, ‘바람’ 등의 작품들은 험난한 세월을 힘겹게 거쳐 온 화가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페이소스로 가득한 이 자화상들은 2020년 ‘모두 안녕’같이 유머 가득한 유쾌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놀라운 변화다.

박건은 옹골찬 작가다. 그 삼엄했던 80년대에 ‘시대정신’을 전시 기획하고 동명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그의 이러한 헌신적 활동은 편협하고 진부한 기존 미술에 반발하여 나타난 당시의 젊은 미술인들을 하나로 아우름으로써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미술운동이었다. 오늘날 우리 미술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옹골찬 박건 화백의 헌신에 도움을 입은 바 크다. 박건 화백의 전시에 축하를 드린다.//하일지//

장소 : 미광화랑
일시 : 2022. 12. 17. – 12. 3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