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균질한 화면구조와 기하학적인 구성의 조화
신항섭(미술평론가)
현대회화 양식이 출현한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얼굴로 모습을 바꾸어가면서 표현영역을 무한히 확장해가고 있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미술양식이라는 뜻이다. 현대회화의 속성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한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엇’은 내용을 말하고 ‘어떻게’는 형식을 말하는데, 현대회화는 후자를 더 중요시한다. 다시 말해 ‘어떻게’는 표현기법이나 표현방법을 가리킨다. 표현기법 및 표현방법이 조형적인 개별성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현대회화가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표현기법 및 방법론에 대한 부단한 탐구를 통해서이다.
조미화는 최근 기하학적인 추상에 몰입하고 있다. 기하학적인 추상이 등장한지 1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운 방법을 통해 생명력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작업은 마치 섬유의 조직을 연상케 하는 무수한 선들이 연속적으로 붙여지면서 면을 이루고, 그 면들이 기하학적인 구성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된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질감을 가진 직선은 붓이 아니라 주사기의 산물이다. 작업은 아크릴 물감을 주사기에 넣어 일정하게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치 색실과 같은 질감을 가진 직선적인 이미지 또는 곡선의 이미지가 화면을 덮는 구조이다. 이처럼 붓 대신 주사기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표현기법은 현대회화의 한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주사기 기법은 오래 결코 새롭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쓰이느냐에 따라 매우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의 작업은 기법의 반복성 및 연속성 그리고 균질성이라는 방법을 중시한다. 주사기로 물감을 캔버스에 붙일 때 일정한 속도 및 힘이 요구된다. 같은 크기의 선이 연속적으로 나열되고 겹쳐지는 가운데 균질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호흡과 힘의 안배가 요구된다. 신체적인 힘을 통제하지 않으면 선은 비뚤어지고 선의 두께가 달라져 균질한 화면을 얻기 어렵다. 이 과정이야말로 정신통일과 같은 엄격한 자기통제를 필요로 한다.
이는 어쩌면 지극히 단순하고 단조로운 행위의 반복이자 연속일 뿐이어서 표현행위 자체에 큰 의미를 둘 수 없을 성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면 시각이 바뀐다. 화면의 세부를 보면 거의 일정하게 보이는 두께의 직선 또는 곡선이 무수히 나열되고 겹쳐짐을 알 수 있다. 한 두 번의 표현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표면은 견고한 물감의 응결체와 같은 구조가 형성된다. 이 때 단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일색상 또는 그와 유사한 색채들이 겹쳐짐으로써 그야말로 질감의 덩어리가 된다. 따라서 멀리서 보면 중간색과 같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균질한 질감이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중성적인 색채 이미지로 인해 평면에 근사하게 보인다.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성과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균질한 물감의 질감에다 중간색조 그리고 평면적인 이미지는 형태에 대한 그 어떤 상상도 불허한다. 대신에 여백의 여운을 비롯하여 정온, 평정, 명상, 사유와 같은 개념을 불러들인다. 실제로 아무런 조형적인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전면회화 형식의 작품일 경우에는 눈에 읽히는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각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사유의 경계로 들어서기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화면에 구성적인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시각적인 이해의 문고리를 만들고, 무언가 내용을 담으려 한다. 평면적인 이미지의 구성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조형적인 장치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색채들을 평면적으로 표현하여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짜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하학적인 구성 초기에는 평면적인 표현위에 무언가 스토리를 의식한 이미지들을 배치하는 방식의 작업도 있었다. 전면회화 형식에다 부분적으로 이미지를 도입하는 식이었는데, 이는 문학적인 성향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단색조의 색채추상에다 인간 삶과 연관된 이미지, 즉 건물이라든가 길 또는 새 따위의 형상을 배치함으로써 문학적인 서정성이 자리하게 됐다. 화면의 적은 부분에 작은 이미지를 배치, 공간적인 여백이 화면을 지배하는 경향이었다. 그는 추상작업일지언정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적인 접근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친 듯싶다. 그리하여 무언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한 이해의 문고리를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기하학적인 선을 도입하면서 화면을 분할하여 평면적인 이미지를 조합하는 형태의 추상작업에 이르렀다. 기하학적인 추상은 냉철한 이성, 즉 이지적인 성향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차갑고 예리하며 지적인 취향을 반영하는 그의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구성은 빈틈이 없어 보인다. 감성적인 접근을 차단하는 듯싶은 예리한 선과 예각 그리고 차가운 성향의 색상의 조합의 경우 지적 취향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색채감각에서는 난색 또는 한색과 같은 특정의 성향을 나타내는 동일색상 계열로 통일하는 등 세련미를 보여준다. 균질한 화면 구조의 바탕이 워낙 견실하여 그 어떤 이미지나 구성이 아니더라도 능히 완성된 작품으로서 평가받을만하다. 단지 명상적인 또는 사유를 이끄는 것만으로도 작품적인 가치는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기하학적인 이미지가 아닌 보다 더 간결하고 간명하며 단순한 평면적인 이미지, 즉 전면회화 형식에서 더 큰 비전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신항섭//
장소 : 김해서부문화센터 전시실
일시 : 2022. 12. 13. – 12. 18.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