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호展(금샘 미술관)_20221207

//작가 노트//
작업실에서…
어느 날 엄습하듯 몰아친 알 수 없는 많은 감정은 마치 나를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구명정 속에 가두는 듯했다. 좌표도 없이 표류하는 구명정 안에서 때가 되면 어떤 곳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했고, 그 작은 믿음은 잔잔하거나 거친 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느 누구의 부름도 없는 이 항해의 도착점이 어느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어떤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방 속 오래된 식량(識量)은 버리고 새로운 양식(良識)을 구해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는 여정에서 지루하거나 혹은 진부해져서 지쳐 버릴 수 있는 나를 위해서.

deconstruction은 나의 작업에 많은 영감을 주는 개념어이다.
해체는 유, 무형의 것을 허물어 없애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구축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부정성과 긍정성이 공속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기존의 작업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deconstruction, 탈-구축하는 작업과정에서 나는 형태적인 것보다는 관념적인 것의 소멸과 생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콩테의 거친 선과 그 위를 가로지르며 흘러내리는 묽은 물감의 반복적인 겹침은 내가 바라보는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해체와 생성을 이미지화 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은 나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코비드19가 한창이던 2021년, 나는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나의 행동과 작업 과정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떠오른 단어가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주목받지도 않으며 대중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으며 매일같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시키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분주히,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결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작은 움직임 속에서 고요하거나 때로는 거칠게 표현되는 선과 면들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란다.//백철호//

장소 : 금샘 미술관
일시 : 2022. 12. 07. –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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