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봉인된 시간의 타래를 풀어 삶의 꼬리에 묶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20세기가 시작되기 직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가 “시간을 직접 사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 동시에 시간을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는 가능성, 즉 생각이 나는 대로 시간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 있어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였다. 이는 단지 기술적인 차원만의 문제가 아닌 영화 속의 시간을 사람들이 매 순간 부딪치는 현실과 연계하도록 하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이를 ‘봉인된 시간’이라 부르고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화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관객이 영화관에 가는 이유도 영화 속에 담긴 봉인된 시간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단 영화만이 그럴까. 시간_서사를 담은 지극히 사적인 타인의 시간을 통해 본, 우리의 삶은 새롭게 해석되고 재무장되기도 한다. 근래 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삶 전체를 바꾸어놓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 통념상 봉인해야 할 시간을 활짝 열어 일상 속에 연결 짓고 의미를 담아 다른 삶을 이야기 하는 ‘봉인된 시간의 타래 풀기’ 작업을 한다. 존재를 잃어 황망하고 아픈 시간 속에서 그를 떠올릴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강력한 것은 수(數)와 관련된 기억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수(數, nunmber)와 관련을 맺으며 살고 있었다. 한 개인의 식별 부호로 작용하는 수(數)들은 부지불식간에 소유하고 있는 존재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함께 연결되었던 숫자들이 그의 향기를 담고 새롭게 조합되어 다가온다. 그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주민번호,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사용하는 전화번호, 옷과 신발을 쇼핑하기 위해 활용하는 허리 치수, 기장, 신체 사이즈, 신발 사이즈. 그리고 금융이나 가상공간의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비밀번호들. 그를 만날 수 있는 안식처인 집 주소, 집 키의 번호, 그의 일 터에 있는 사물함 위치를 나타내는 숫자와 기호들, 시계의 일련번호, 카메라의 기종 등. 결국엔 그가 없어도, 존재가 사라져도 숫자는 남아 그의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 숫자란 무엇인가. 삶 속에서 우리와 관계 맺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수학적 크기나 양이 아니라 존재를 의미하는 또 다른 복제(simulacre)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종종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아쉬운 시간을 마주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 않았어야 하는 행동을 후회하고, 멈췄어야 할 순간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오늘의 삶을 다짐한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조금 더 평온하고 아름답게 살자고. 대부분은 아주 작은 사건으로 마주할 순간들. 유독 내게는 큰 아픔이 되어 다가왔지만 그것이 어디 크고 작음의 문제랴. 다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그와의 시간. 이제는 펼쳐지고 과정이 되고 만들어지지 못하는 영원히 봉인된 시간들을 오늘 내 삶의 꼬리에 묶어 회화로 이야기를 풀어 본다. 누군가는 나의 그림을 읽고, 자신의 하루에 각자의 봉인된 시간을 꺼내 삶의 꼬리에 달고 조금 다른 행복한 삶을 꿈 꿀지도 모를 일이다.//이미정//
장소 : 갤러리 세인
일시 : 2022. 12. 08. – 12. 15.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