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류형욱 작가는 오랫동안 인물화를 위주로 작업하고 있으며, 대부분 채색화로서 분채, 석채, 과슈 등 전통재료에서 현대적 재료에 이르는 다양한 수성기반의 안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채색화가 기본이기는 하나 다년간의 수묵작업을 통한 용필능력을 기반으로 필선과 채색의 조화를 작품의 모토로 삼고 제작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작가의 손을 통한 감각적 표현, 필선과 채색의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조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채색에서는 까다로운 전통 채색법을 고집하며 다년간 작품제작을 이어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전통 채색기법은 물론 현대적 채색안료와의 혼합사용을 통한 유연하면서도 세련된 표현을 목표로 도전 중에 있다.
이번 전시에는 100호에서 10호에 이르는 다양한 사이즈의 작품들과 전통기법과 현대적 기법에 아우르는 다양한 시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제는 여인 인물화와 채색산수화 또는 풍경화 등을 이용한 감각적 용필의 표현과 더불어 채색의 율동과 조화를 중심으로 한 순수표현 자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통회화에서 볼 수 있는 문양과 도상들을 기존의 서사구조에서 도려내고 현대사회를 은유하는 기호로서의 이미지로 꼴라주하여 화면을 구성했다. 도식화된 인물표현과 꼴라주 된 도상들은 사뭇 생경한 광경을 자아내지만 이것은 이시대의 빈약한 포용성의 민낯을 대변하는 하나의 이미지 텔링으로 보여 지길 기대한다.//미광화랑//
//작가 노트//
작품을 논하기 이전에 작가로 살아남음이 우선하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렇게 나의 작품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야 했던 증명서 같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당당히 못 내미는 스리슬쩍 내미는 그런 것이다. 등 떠 민사람 없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고 삶이여야 했겠지만 실상 고단하고 불안하며 비루하고 캄캄한 나날이어서 암울했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 것이 나의 작품에 그대로 묻어있겠구나 싶다.
그저 열심히 그리고, 또 그리고, 맨날 그리면 뭐라도 될 것 같았던 무지했던 시기도 있었고 빌고, 또 빌고, 사정하면 뭐라도 들어줄 것 같았던 맹목의 그런 시기도 있었다. 그리기에 익숙해진 손은 그리면서 세월을 소거하고 맹목적 기원은 허공에 붓질하듯 허무하기 이를때 없다. 눈으로 보고도 알지 못하고, 귀로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는 망각의 나날들 이제야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무지와 맹목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작업은 그런 세월 위에 올라서 있다. 허무했던 붓질은 나의 몸이 감각했던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고, 하염없이 맹목적이던 믿음은 기민하게 조짐을 읽어 낸다. 꿈속을 헤매이다 깨어나 기억을 더듬고 짜내어 뭐라도 쓰 내려가듯, 손을 통해 내려진 수 많은 선들은 몽롱했던 꿈의 기억 속 그림자를 형상으로 드러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은 현실 속 여인인 듯 꿈속의 여인인 듯 명료하지 않다. 그리기를 반복하지만 그 끝은 도식화된 기호로 굳어진다. 나에게 있어서 여인의 형상은 작품을 이어나갈 가장 강력한 예술적 충동의 방아쇠와 같다. 몰입을 유지해 주고 표현 의지를 자극하는 힘의 원천이며 끈임없이 기억의 파편들을 화폭 속으로 쏟아내게 도와준다. 본래 영감을 주는 인물의 묘사는 심미감과 호기심이란 감각적 욕구의 결과인 것에 명백하지만 작품에 들어나는 여인의 형상은 심미적 강박 또는 욕망을 표상한다. 스스로 보건데 기호로서의 인물은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이란 기표에 거쳐 감상자와 소통은 가능하되 깊은 교감은 불가능하지 싶기도 하다. 오히려 배경을 가득 매운 식물(자연)이미지에 감성적 교감의 가능성을 보는 아이러니함이 나의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건 아닐까?
“모델 같은 여자의 이미지는 현실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욕망 그 자체를 보일 뿐이다. 개별성이 없는 세계는 볼거리로 내몰리고 볼거리는 자신의 눈, 주체의 시선을 그곳에서 없애는 것이다. 타자의 눈, 욕망만이 그곳에 있음을 보인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의 욕망, 구름이 아니라 물기로 우리에게 스며들다 사라지고 말 현실의 잉여가 아니겠는가. 그가 보여주는 여자들 앞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의 정체는 이런 것이 아닐까.”
기운이란 것과 표정이란 감상은 나의 작품 속 전통적 필선이 가진 기운생동의 아이콘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한국화를 전공한 탓도 있겠지만 전통회화에서 가져온 몇몇 도상들(구름, 소나무, 바위 등)과 변형된 기호들(운문, 수문 등)을 본래의 서사구조에서 도려내어 콜라주 하고 이어 붙이면 제법 생경한 의미로 자리 잡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감상의 아이콘과 구조적 생경함이 도식화된 인물의 건조함을 힘겹게 떠받친다.
인물화뿐만 아니라 몇 개의 풍경화는 ‘산수’를 반영하여 제작한 작품들이다. 예로부터 산수화는 산(자연)을 사생한 그림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마음)을 산과 물의 이미지로 나타낸 관념회화이다. 동양에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이 자연으로서 자연을 마주보는 동질적 관점을 산수로 표현한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나의 그림에 등장하는 산과 나무들은 인간 또는 인간 군상들을 그린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대부분 일상 속 불안감(憂患) 또는 길상(吉祥) “좋은예감”에 대한 소망과 벽사 (僻邪) “나쁜 기운을 막다”의 기대감 등의 다양한 직감적 기운들을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이다. 징조(SIGN)라는 주제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 등을 예지몽(豫知夢)의 형태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예지몽이란 다가올 미래의 일을 꿈속에서 예견하는 형태로 일상적이지 않은 기괴한 상황이 펼쳐진다. 여기에는 다양한 패턴이 존재하고 각각의 해석이 따라온다. 그 해석으로 미래를 예견하는 구조의 꿈에 대한 해몽이다. 다만 이것에 대한 진위여부는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의 구조만 차용해서 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상 속 심리상태를 기대감과 불안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나간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다.//류형욱//
장소 : 미광화랑
일시 : 2022. 10. 14. –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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