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평론//
그가 사용하는 말투를 우리는 흔히 ‘갱상도 포준어’라고 한다. ‘경상도 표준어’를 경상도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말한다. 나도 경상도 출신이지만 다른 지방에서 삼십 년 넘게 산 탓인지 그가 사용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하지만 표준어를 매끄럽게 사용하는 그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보리 문디(문동이)’ 같은 것이 그의 진면목인지 모른다.
그에게는 언제나 원시의 냄새가 난다. 요즘 유행하는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이 아니라 ‘따시남(따뜻한 시골 남자)’의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레이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사베지 존은 다른 사람이 시험관에서 탄생하는 육종된 신세대인 것과 달리 친모의 자궁에서 태어난 원시인이다. 소마(Soma)라는 알약을 먹으며 행복에 취하는 문명인과 달리 그는 언제나 된장 같은 구수함에 배고파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사베지 존과 동류의 사람이다.
그는 말투만 투박한 것이 아니라 패션 감각도 떨어진다. 그가 물감을 고를 때나 캔버스를 놓을 장소를 선택할 때 보이는 신중함과는 달리 옷을 고를 때는 매우 소탈하다.
그가 마시는 술 또한 마찬가지다. 막걸리보다도, 우아한 양주보다도 더 즐겨 마시는 술은 언제나 소주이다. 그의 그림을 지배하는 청색의 바다 빛과 소주병의 푸른 색감이 유사한 탓인지,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그가 소주의 투명한 술 빛이 그것을 마심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싶은 탓인지 모른다. ‘그림과 술, 인간’만이 그의 주제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언제나 현장을 중시한다. 조선 회화를 두고 말하는 것으로 친다면 진경(眞景)을 중시한다. 하지만 그는 대상을 그리되 사실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에게서 진경은 거기서 풍기는 아우라를 중시하기 때문일 뿐이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그는 ‘있어야 할 것을 상상’할 뿐이지 있는 것을 모사(模寫)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가 그리는 대상은 거의가 자연이다. 사람들 삶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지만 대부분 그는 자연을 그린다. ‘산과 나무, 바다와 해안선’이 그의 형상화 대상이다.
그는 지적(知的)이기보다는 예술적이며 인간적이다. 예술적 까칠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점은 예술하는 사람의 자부심이다.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측면은 그와 더불어 마시는 순간마다 그의 눌변(訥辯)에서 시나브로 느껴진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술과 함께 생각나는 사람, 그가 바로 ‘보리 문디 화백’ 김영주이다.//시인 전범수//
장소 : BNK 부산은행 갤러리
일시 : 2022. 07. 25 – 08. 0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