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현展(전시공간 영영)_20211219

//부산일보 보도자료//
예술가들이 우리 땅의 상처를 기록했다. 하나는 내부에서 만들어진 상처이며, 또 하나는 외부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이다. 전시공간 영영과 공간 힘, 부산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독립 예술공간 두 곳에서 이 상처를 마주할 수 있다.

오래된 도심의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문. 단순한 재개발 지역의 풍경이 아니었다. 박자현 작가는 “성매매 집결지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림 속 문 옆의 ‘예약 중’이라 쓰인 간판과 다른 문 앞에 걸린 여성 코트가 아프게 다가왔다.

박 작가의 개인전 ‘오늘 맗음 맗음’은 26일까지 전시공간 영영(수영구 망미번영로52번길 5)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종합심리검사지 표지에 누군가가 직접 쓴 글씨에서 가져왔다. “아는 분의 검사지인데 글자가 ‘맗음’으로 틀리게 쓰여 있잖아요. 그림이 ‘맑음’과 반대의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어울리는 제목 같았어요.”

재개발 지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오던 작가는 속칭 ‘방석집’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미남로터리 근처에 있던 성매매업소들이 아파트 재개발로 비워지는 모습을 봤어요.” 그는 여성들이 착취를 당하며 일하던 공간이 인권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당감동 백양대로 아래 상가들을 그렸어요. 피란을 온 여성들이 갇혀서 일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당감동 성매매 집결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박 작가는 “지역 주민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성매매 업소들과 그 뒤쪽에 여성들이 살던 쪽방의 흔적이 남아다”고 전했다.

전시장 바닥에 줄지어 세워 둔 낡고 닫힌 문들의 그림. 박 작가는 감전동 뽀뿌라마치에서 본 문의 흔적을 이야기했다. “문이 있어도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했고, 창문이 있어도 자유롭게 바깥과 소통할 수 없었잖아요.”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림 속 문 뒤에서 묘하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박 작가는 “미남로터리 근처 성매매 업소 앞을 지나가다 문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박 작가는 부산에서 상인으로 자녀를 키운 한 여성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한다. “이번 전시를 생계부양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작가는 전시장에 책상을 두고 관람객들이 여성 노동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게 했다.

‘문 하나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 같다.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다. 멀찍이서 보니 그래도 전체가 보인다. 묵묵히 기다린다. 굳게 닫힌 채로.’ 관람객이 남긴 글에 박 작가의 글이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부산일보 2021년 12월 23일 보도, 오금아 기자//

//작가노트//
창문이 없고, 문들이 있어도 화려한 시트지로 모두 가려져 내부의 삶과 폭력이 가려지는 공간. 누군가의 어머니가 누군가의 언니가 생활을 위해 있어야 했던 곳입니다. 전쟁 이후 피난민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갇혀 있던 성매매 집결지, 당감동 백양대로 아래, 닫혀진 상가 건물들의 남겨진 흔적들을 기록하는 회화 작업입니다. 볼 수 있는 만큼, 그릴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자고 생각하며.. 그림의 시간은 노동으로 채워지고 화면 속 공간 안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상인으로 자녀들을 키워온 한 개인의 글이 이어져 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 해방 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작은 배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IMF 시절 비어있는 거리와 상가들을 걸어 다니며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할지를 고민하던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쓰고 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공간입니다.

해리 기억장애를 겪는 개인의 남은 기억이 적힌 글들, 트라우마적인 기억과 삶 속에서 기쁨이 되었던 기억들, 개인의 기억은 두서없고 여성 노동과 관계될 수도 관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박자현//

장소 : 전시공간 영영
일시 : 2021. 12. 19 – 12. 26.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