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정희욱이 돌로 조각한 얼굴들과 돌에 아로새긴 얼굴들이 있다. 그 얼굴들은 하나같이 미완 같다. 바닥에 반듯하게 서 있거나 모로 누운 얼굴들이 깨다 만 것 같고, 쪼다 만 것 같고, 갈다 만 것 같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어색하지도 어눌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다. 미완 같기도 하고, 미완 때문에 오히려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미완 자체로서 이미 완성 같기도 하다. 이로써 미완인 채로 완성의 개념과 감각을 재정의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 지점을 작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작가가 조각한 얼굴들은 영적이다. 풍부한 암시가 영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가늘게 뜬 실눈과 앞으로 쑥 내민 입술이, 갸름하고 펑퍼짐한 얼굴이 작가를 닮은 것도 같고, 부처를 닮은 것도 같고, 흔한 선남선녀들의 초상을 닮은 것도 같다. 이로써 작가는 얼굴의 원형이며 원형적 얼굴을 겨냥한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얼굴을 찾고 싶다(작가의 말)는 것이 그렇다. 이런 원형적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든다. 개별성으로 하여금 일반성을 담보하게 만들고, 특수성으로 하여금 보편성을 획득하게 만든다. 결국 예술이란 주관을 객관화하는 것이고, 재차 객관을 주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관과 객관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게로르그 루카치)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매개로 보통사람들의 얼굴을 만든다. 이처럼 작가의 조각으로 하여금 보통사람들의 얼굴을 유추하게 만드는 것은 그저 감각적 닮은꼴이라기보다는 영혼을 표현한 영적 환기력 때문이다.(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이런 영적 환기력을 위해선 단순한 감각적 닮은 꼴을 넘어서는 암시가 뒷받침되어져야 한다. 조형을 매개로 미처 조형되지 않은 부분(이를테면 영혼 같은)을 상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현대적인 어법으로 옮기자면 생략화법일 수 있다. 그렇다. 작가의 조각이 얼핏 미완성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을 알고 보면 암시였고 생략이었다. 암시와 생략이 영적 환기력을 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의외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적지 않은 부처의 얼굴들이 그렇고, 대략적으로 치자면 가부키와 같은 가면들이 그렇고 특히 주술가면이 그렇다. 가면은 이중적이다. 일차적으로 가면은 본심을 숨기고 있는 가식적인 얼굴을 의미하지만. 이와 동시에 미학적으로 유의미한 경우로 치자면 사람의 내면을 꽤 뚫는 영적 투시력을 의미하기도 한다.//갤러리 이듬//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21. 11. 11 –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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