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이번 ‘비평범의 조화’ 시리즈는 ‘묘지마을’ ‘벽화마을’로 불리는 돌산마을이 사라지는 시점을 계기로 하여, 지난 13년 동안 나의 작업에 대한 한 곡면을 정리하는 취지에서 펼쳐 보이는 작업이다. 형식 측면에서 말하면 ‘주인공 프로젝트’의 후속이자 앞으로 나의 작업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중간 점검표이기도 하다.
2009년 부산 원도심 주변 어느 마을이 ‘벽화마을’로 단장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아름다운 조경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에 이끌려 사진동호인들과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시각적 볼거리의 대상을 기대했던 내 마음은 평범하지 않은 조화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좁은 마당에 자리한 이상한 무덤과 빨랫줄 옆의 텃밭 울타리가 익명의 비석에 의존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 낮인데도 오싹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 TV에서 ‘전설의 고향’ 연속극을 보며 자라서인지, 묘지는 집 옆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무서움의 대상으로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곳을 자신만의 고유한 생활 터전을 가꾸었고, 새롭게 단장한 벽화가 그 터전을 고히 감싸고 있었다. 묘했다. 소식으로 접할 때 나는 마냥 흥미로울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 그 기대를 빗겨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말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되짚어보면 그때 내 속에 들어온 감정이 지금까지 내 작업의 계열을 형성하게 만든 셈이다.
그즈음 사진에 대한 생각과 사진적 태도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나는, 2011년 영광문화원을 거치고 2012년 고은사진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고은사진아카데미는 국내외에서 활약 중인 여러 명의 ‘전시기획자와 사진작가’ 멘토들에게 2년 동안 지도를 받을 기회를 나에게 마련해 주었다. 멘티로서 나는 작가가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예술적 대상으로서 오브제를 대하는 심미안적 태도의 특별한 점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사진의 테마는 “타인을 향한 이해와 타인과의 소통”으로 정리됐다. 이것이 반영된 첫 개인전이 ‘수정아파트’였다.
2015년부터 나는 “나의 내밀한 과거에 ‘잠재된 타인의 자리’를 탐구하는 오브제”를 작품의 주요 기획안으로 삼고, 이를 사진적 특이성으로 부각하는 표현 기법에 공을 들었다. 이것의 결실이 ‘주인공 프로젝트’였다. ‘주인공 프로젝트’는 사람의 시각과 렌즈의 화각의 차이가 확연히, 주변부 재현 측면에서 변별되는 점을 사진적 표현물로 구현한 시리즈 작품이다. 이 기획에서 나는 (넓은 의미에서) 꼴라주 기법을 활용했다. “평소 우리는 변방에 놓인 것에 신경 쓰지 않지만, 그 주변부가 ‘거기에 존재해왔다’는 사실만큼은 그 신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나는 잘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정면성을 드러내어, 주변부에 있던 그것을 중심이 되도록 꼴라주 작업을 시도했다.
2021년 오늘의 작업 ‘비평범의 조화’는 이전 작업과 달리 화각은 가만히 둔 채 그 화각 속에 잠재된 색 채널의 특이성을 부각한 시리즈이다. 이것은 빛의 3요소인 R,G,B 색채널을 임의로 바꾸는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을 통해 ‘이질적이고 비평범한 것의 조화’를 사진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RGB 세 가지 색채널의 균형 있는 조합이 투명한 빛을 내는데, 사람의 안구 망막에도 그와 같이 RGB 색채널을 담당하는 세 가지 종류 색세포가 있다. 그런데 만일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색채널 중 일부가 서로 채널 자리를 바꾼다면,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색감을 지각하게 된다. 이번 작업은 고유한 자아의 공간들이 바뀌면서 느껴지는 색감의 부조리와 부조화를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다.
예전 2009년에 나는 이 마을의 풍경이 ‘내 흥미를 자극할 만한 시각적 대상물로 적합하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돌산마을의 어느 부분과 내가 맞교환되는 묘한 기분을 시나브로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그 마을의 부분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마을을 내 부분으로 느끼길 기대했던 첫 방문 때와는 확연히 다른 사진적 태도였다. 2009년도의 나는 돌산마을을 단순한 호기심의 사진적 대상으로만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한 예전의 태도가 무모했다고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비평범의 조화’는 매우 개인적 작품이다.
돌산마을을 자주 방문하면서 여러 주민과 안면을 트게 되었고, 어느 주민과는 속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곳을 흥밋거리로만 여겼던 외부자의 가면을 점차 벗게 되었고, 주민 일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간헐적인 방문과 몇 차례 식사를 함께한 것으로는 내가 타인의 삶을 전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역지사지라고 말하는 사자성어가 실제로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돌산마을을 부분적으로 역지사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분이라고 해서, 다시 말해 전체보다 작고 적은 일부라고 해서, 가치가 낮거나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나는 ‘비평범의 조화’에서 색의 전체 중 일부 채널을 역지(易地)하는 사진적 표현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변화를 사지(思之)하는 시간을 가졌다.//윤창수//
장소 : 스페이스 움
일시 : 2021. 09. 25 –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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