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展에 부쳐//
초록의 시작이 한 점이듯 관계의 시작 또한 점과 점의 만남이다. 점은 선으로 이어지고 선은 시간이 쌓여갈수록 서로 얽히어 뿌리를 내린다. 뿌리의 한 점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장구하게 흐르는 물과 같아 마침내 바다라는 세계에 도착한다. 결국 삶의 모든 여정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은 여전히 經句로 존재한다.
그러나 관계의 시작은 또한 갈등의 시작이다. 한편, 갈등은 성장으로 이끄는 힘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공존의 미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공존은 절묘한 균형이 만들어간다. 균형이란 경계에서서 경계를 걷는 일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어깨를 비스듬히 내어주는 것과 같다
이홍선 작가의 ‘풀뿌리’를 보면서 빨랫줄과 바지랑대의 관계가 떠올랐다. 바지랑대가 받쳐주지 않는 빨랫줄을 상상해보라. 제 아무리 팽팽하다 해도 홀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줄에 걸쳐진 옷가지들이 한순간 가운데로 쏠려 내려오기 때문이다. 바지랑대에 기댄 빨랫줄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며 빨래를 바삭하게 말린다. 흔들리며 성장하는 삶처럼 흔들리며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공존의 미는 계란에서 볼 수 있다. 계란 노른자와 흰자는 서로의 경계를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경계의 침범은 결국 공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은 경계를 지켜내는 힘에 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복잡계 속에서 균형을 이뤄내는 지성의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가만 들여다보면 이홍선의 ‘풀뿌리’는 서로 얽히어 상장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킨 타래를 풀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코스모스의 시작이 카오스이듯, 이홍선의 ‘풀뿌리’는 무규정의 규범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깊은 뿌리를 내린다. 묵은 나무를 뿌리로 자라는 어린나무처럼, 묵은 가지 틈을 열어 어린나무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마침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오랜 울림으로 터를 내리기 위해서다.//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장소 : BNK부산은행 갤러리
일시 : 2021. 07. 22. –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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