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표展(미광화랑)_20210623

//평론//
통곡의 가슴으로 그린 실향 57년, 원한의 세월

이구열 – 미술평론가,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가슴 속이 그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슴에 깊이깊이 쌓여 있고 굳어져 있는 6.25전쟁과 실향의 원한, 올해로 어느덧 57년 세월을 꼽게 된 그 한없는 아픔의 감정들을 작가 자신의 체험적 증언 형태로 연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타이틀과 작품 하나하나에 강하게 부각시킨 표현의 내면들은 작가의 솔직한 발언이자 참을 수 없다는 하나의 역사고발이기도 하다.
모두가 작가의 직접 체험과 증언의 형상으로 일관되게 표현된 “통한의 회화적 기록들”인 이 전시의 작품들은 작가와 같은 아픔과 통한의 삶을 살아온 생존하는 노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참담했던 실상은 현재도 끝나지 않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젊은 층에도 우리의 비극의 현대사를 엄숙히 되새기게 할 만하다. 사진이나 그 실상의 문헌기록 또는 가끔 상기시켜 주는 신문 방송을 통해 그 진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든 관람자가 같은 느낌일 것이라 생각된다.

미술계에서의 그간의 이동표 평가는 그를 낳자마자 불쌍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간 어머니를 마음으로 되살려 그리고 또 그리려고 한, “어머니 주제 집착의 화가”로서 널리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마음속에 그만큼 항시 살아있는 영원한 어머니상의 슬픈 찬미를 수십년 이상 끊임없이 연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작가 자신과 모든 6.25세대의 슬픈 이야기라는 사실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황해도 벽성(해주에서 가까운 고장)의 농촌에서 이동표를 낳은 어머니는 가난으로 산후 바라지가 잘못돼 이내 불쌍한 죽음을 하였다고 한다. 해주미술학교 학생이던 6.25전쟁 때 생사의 여러 고비를 넘어 남한으로 탈출할 때에도 그는 그럴 겨를이 없어 어머니의 사진 하나를 챙겨오지 못했다. 그 회환이 그를 평생 한스럽고 슬프게 했다. 그 회환은 화가로 뜻을 이룬 그의 그림 속에서 어머니의 그리움이 사무치게 거듭거듭 그려졌다. 그것은 곧 어머니의 영생을 기도하려고 한 것일 것이다.
이동표의 “어머니 상”들은 사진처럼 사실적 묘사로 추구되지 않았다. 사진이 없으니 그런 현실감의 묘사는 하고 싶어도 사실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대신 그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 같은 본성적 모성애의 고귀함을 이야기하듯이 상징적 형상으로 그려냈다. 그럼으로서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표현으로 승화시키려고 하였다. 따라서 그 그림들은 특정의 어머니에 대한 공경의 현실관계를 초월한 표상으로 부각되었다. 그것은 오로지 “모든 어머니의 무형의 모성애“의 표현 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화가 자신의 생후 상상이 내포된) 같은 그림 외에 같이 남하하지 못한 생사불명의 아버지 모습 등을 통한의 심정으로 그리기도 했다. 따라서 그러한 표현은 모두 순수한 회화적 표상으로 귀착 되었다.

현대적 표현주의 수법으로 그려지는 주제 이미지의 상징적 메시지가 모두 이 작가의 마음과 정신의 분출이었다. 그 화면들은 결국 작가의 심정과 표현 충동의 작업이었다. 게다가 강렬하고 상징적인 색채의 생동적 발언과 거친 필치의 역동성은 화면 상황을 극단적 비극 또는 비장한 분위기로 뜨겁게 한다. 그 요소들은 곧 이동표의 창조적 저력이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그는 어머니의 영혼을 자신의 화실로 모셔오겠다는 환상적 염원으로“어머니 초혼전(招魂展)”(설치작업,1994) “아! 어머니전”(1995) 등의 개인전을 갖기도 했고, 1999년부터 최근까지는 “어머니 초혼전”, 그 이후전이 지속되었다.
그와 달리 2001년에는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칠순 기념전을 열며 그간의 심정적 또는 정신적 역작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많은 관람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 전시에서는 특히 그가 분명하게 목격하고 또한 악몽처럼 체험한 6.25 전쟁의 참상과 비극의 실상을 참담하게 부각시킨 대작들도 많이 보여주었다. 그중의 최대 거작 ‘이산 50년간의 한, 그래도 서광이'(420×195) 등은 작가의 온갖 회한과 참담한 기억을 최대한으로 전개시킨 것이었다. 그 속에 붉은 십자가와 흰 비둘기를 그려 넣기도 한 것은 곧 평화의 기도와 서광의 염원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이제 칠순 중반에 접어든 이동표는 그간 평생의 가슴 속 한으로 절실하게 그려온 모든 그림을 그 시초인 원한의 6.25전쟁이 발발한 날에 맞추어 한번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싶은 열망을 나타냈다. 이는 민족적 최대 비극인 북한 공산군 남침의 그 동족전쟁과 그 죄악의 책임자를 거의 잊고 있거나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전쟁 이후 세대들에게 널리 보여주어야겠다는 작가의 강한 심정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것을 작가는 하나의 의무로 여긴 것이다.
그 뜻이 결국 이루어졌다. 작가의 고향인 황해도 실향민들의 중앙도민회가 주최하여 “실향 57년, 원한의 세월”로 전시 타이틀이 붙여진 이 전시의 역사성을 옳게 인정한 조선일보사가 후원한 것이다. 파격적 거작들이 많이 포함된 그 화면들에서 작가는 주제 내용 하나하나에 자신의 겪은 사실과 목격한 비극들의 증언 혹은 확인을 강렬한 발언으로 비통하게 쏟아 놓는다.

이미 언급한대로 “가슴속의 어머니 상” 화가인 이동표의 작품들에서 일관된 주제인 애절한 고향의 기억과 내 나라와 그 역사 등은 모두 어머니의 품과 애정으로 겹쳐졌다. 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에 작가는 자신의 작의(作意)를 슬픈 서정시의 구절처럼 압축하여 쓴 짧은 글을 붙여 관람자들의 독화(讀畵)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로써 작품 하나하나를 더욱 숙연하고 비감스럽게 보게한다.
가령 우는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커다란 피난 보따리를 힘겹게 인 여인 – 어머니가 유엔군 전투기와 불타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절망적 비극 상황에 울부짖으며 걸어오는 모습이 그려진 ‘6.25전쟁 발발’ (1988)에는 “그날 0시를 기해 38선 전역에서 남침이 감행되었다. 우리 강산은 피로 물들여졌고 인민군에 쫓긴 어머니는 아기를 업은채 절규한다. 가족은 흩어졌고 천만 이산가족은 실향의 한을 가슴에 담은채 울부짖었다“는 작가의 글이 붙여지고 있다.
선명한 기억 속의 고향 해주의 망향을 어머니 모습과 합치시킨 ‘어머니 품 같은 내 고향 해주’ (2005) 에는 “어느 때고 넋이라도 돌아가리라, 저승의 아버지 어머니 곁에 가리라” 라는 애절한 독백이, 최근작 ‘고향에 가고 싶다’에는 “총부리 앞에서 철조망 붙잡고 울부짖는 노인(작가 자신과 모든 연로 실향민)의 배경에는 피난길의 모자상을 도입하며 ”총부리 앞에서 죽인다 해도 실향민의 눈동자에는 오직 고향에 가야한다는 의지일 뿐,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절박한 열망의 말을 써 붙인다.
‘피난길에 죽은 아들의 장례’, ‘통곡의 철조망’, ‘얼마나 많은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다 죽어갔는가’, 등은 명제 자체가 그림의 비극성을 직설하고 있다. 같은 실향과 6.25 체험의 화가는 아직 많이 생존해 있다. 그러나 이동표처럼 이렇게 절절한 작품행위를 평생 계속한 작가는 달리 찾아볼 수 없다. 이동표 만의 철저한 집착이다. 홀로 남하 하면서 같이 오지 못한 한을 사무쳐 하면서 1998년에 그린 대작 ‘아버님 전상서’에서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의 커다란 둥근달 안에 쓸쓸한 모습의 노인 – 아버님을 그려 넣고 그 앞에는 남한에 잘 살아있는 자신의 가족이 ‘아버님 전’ 이라고 쓴 깃발과 더불어 등장한다. 그리고 카달로그의 그 도판에는 “매년 추석날 밤 보름달에 비친 아버님 환영을 보면서 띄어 올리는 애절한 편지, 소자도 하늘에 오르는 날 우리 부자 구름 위에서 만나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는 상서를 곁들인다.

그 화면들을 보고 글도 읽으면 같은 실향민이고 같은 아픔의 세월을 살아온 나도 가슴이 뭉클해 온다. 이런 통곡의 그림이 또 있을까. 이미 말했듯이 그 작품들은 단순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그 비통한 역사사실의 체험을 ‘어찌 다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말할 수 있으랴’ 하는 통한의 메시지를 그리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상징적으로 그려짐으로서 그에 따른 무언의 통곡 소리가 화면 가득 충만하게 하고 있다.//2007년 조선일보미술관, “실향57년 원한의 세월” 이동표 초대전’, 이구열 미술평론//

장소 : 미광화랑
일시 : 2021. 06. 23. –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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