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자료//
“과거 우리나라에서 ‘퀼트’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이나 공인된 자격증이 없었어요. 일본으로 나가 고가의 돈을 들여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수밖에 없었죠. 우리나라에도 인프라를 확대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퀼트’의 사전적 의미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나 모사 등을 넣고 바느질해 누비는 행위 또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말한다. ‘조각보’, ‘누비 공예’ 등과 동일한 개념으로 과거부터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예술문화 중 하나다.
한국퀼트연합(이하·퀼트연합)은 퀼트의 연구개발, 체계화, 저변확대 등을 위해 지난 2008년 4월 23일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지역사업부(6개 지회, 10개 사업부) △A&C(Art&Craft)부 △운영부 △QFIK(한국퀼트페스티벌) 준비위원회 등으로 구성됐다. 현재까지 각 지부 및 지회를 거쳐간 회원들은 1000여명이 넘는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퀼트는 ‘예술’로 여겨지지 않았다. 퀼트 학원, 샵, 공방 등은 존재했지만 전문가, 작가, 강사에 대한 구분이 모호한 탓에 전문성이나 체계성이 부족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개인이 발급해주는 수료증 형식의 ‘가짜 자격증’만 존재했다.
이러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작가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가 바로 퀼트연합이다. 일선에서 활동하던 작가 12명이 한국 퀼트 발전을 위해 뜻을 함께 했다. 퀼트연합 설립을 통해 한국에서 퀼트의 저변을 확대하고 퀼트에 대한 인식 개선에 나섰다.
처음 퀼트연합 출범에 참여한 12명의 작가들은 ‘한국 퀼트’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선뜻 지갑을 열었다. ‘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연합’ 형태를 취했다. 현재 연합을 운영하는 이사회는 총 7명이다. 이들 모두 설립 당시부터 함께 했던 멤버들이다.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장흥숙(63·여) 씨 역시 마찬가지다.
“회장, 부회장 직책은 있지만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수평적 구조죠. 당시에는 모두가 다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어요. 다들 각자 퀼트샵, 공방 등을 운영하면서 연합을 운영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장 부회장이 처음 퀼트를 접한 것은 1986년이다. 그는 대학시절 염직(직물에 문양을 프린트하거나 물을 들이는 등의 행위)을 전공했으며 출산 후 대학원을 다녔다. 대학원에 다닐 당시 책을 통해 처음 퀼트를 접하게 됐고, 자신의 전공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에 독학하기로 마음 먹었다.
“샵이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배우고 집에서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전통퀼트를 넘어선 아트퀼트가 하고 싶어졌고 2003년쯤에 연합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한국아트퀼트’에 참여하게 됐죠. 다른 선생님들과 만나 뜻을 함께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저에게 퀼트는 제2의 전공이죠”
퀼트연합의 주 활동으로는 교육사업, 자격증 시험 및 발급, 퀼트페스티벌(QFIK)개최 등이 있다. 현재 퀼트연합은 핸드퀼트 자격증(2급, 강사)과 머신퀼트(2급, 강사) 자격증 등의 시험을 주최한다. 그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 중이다. 교재 및 템플릿 개발·보급을 통한 퀼트의 다양성·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2010년 3월에는 처음으로 퀼트페스티벌을 주최했다. 올해까지 8번 개최된 퀼트페스티벌은 회원들의 작품전시 뿐만 아니라 매년 새로운 주제로 공모전이 열린다. 퀼트페스티벌에서는 전통·생활퀼트(패턴을 위주로 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아트퀼트 분야의 작품들도 다뤄진다.
퀼트연합의 이사들은 대부분 책을 통해 처음 퀼트를 접했다. 당시 퀼트는 대중적인 창작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송파 지회장을 맡고 있는 최은영(53·여) 이사 역시 마찬가지다.
의류학과를 전공한 최 이사는 학부생 시절 퀼트 작업을 수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퀼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 후 우연히 책을 보다가 다시 퀼트를 접하게 됐다.
당시 책에 실린 작품을 보고 ‘과연 이것이 조각으로 이은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 그는 혼자서 제작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생활 용품을 만드는 퀼트를 익힌데 이어 학원을 다니며 전문기술을 습득했다. 이후 강의활동과 전시활동을 이어갔다.
“퀼트를 하면 할수록 사람의 인생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조각을 입히고, 색을 입히고, 누비고, 인생처럼 인내가 많이 필요한 과정이에요. 시간도 오래 걸리다보니 작업을 할 당시의 기억, 환경, 상황, 감정 등이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최 이사는 공모전 대상 수상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그는 퀼트작품에 ‘어머니의 쾌유를 바라는 기원’을 담기도 했고 ‘병원에서 느낀 희·비의 감정’ 등을 녹여낸 기억도 갖고 있다.
퀼트페스티벌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선희(57·여) 이사도 퀼트가 가진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오게 됐다. 퀼트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데, 정성을 들여 작품을 완성했을 때 얻는 성취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퀼트만이 가지는 매력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죠.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정직함’이었어요. 퀼트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해놓은 원단을 갖고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요. 원단이 곧 물감인 셈이죠. 솜씨가 좋지 않아도 많은 시간 정성을 쏟다보면 그게 그대로 작품의 질로 표현되요. 이 매력을 한번 맛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죠”
오 이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뤄지다보니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예술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퀼트 작가들이 딜레마를 갖고 있죠. 작품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판매할 수 있는 작품, 즉 실용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예술 작품 만들기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죠. 저 역시 새로운 도전도 많이 했고 경제적 손실도 많이 봤어요.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요”
퀼트연합 서울 서초남부 지점장을 맡고 있는 엄재영 이사(55·여) 역시 항상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잡지, 샵 등을 통해 퀼트를 배운 엄 이사는 약 10년 동안 혼자 개인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 오 이사를 만났고 함께 아트퀼트를 비롯한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작업실에서 작업은 물론 전시회,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죠. 책도 8권이나 냈어요. 물론 경제적 손실을 많아 봤죠. 힘들지만 정말 기뻤어요. 올해 초 센터를 연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퀼트작가, 교육생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거죠. 저희에게는 뜻 깊은 공간이에요”
엄 이사는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이 오랫동안 활동 하는 것이 퀼트문화의 인식개선, 저변확대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엄 이사의 이러한 견해에 모든 이사진들이 동의했다. 이들은 향후 목표에 대한 질문에 입을 모아 ‘오랫동안 퀼트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힘든 모습만 부각되면 누가 퀼트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겠어요. 지금 우리들이 좋은 모습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대중들이 관심을 갖고, 또 다른 작가가 나오죠. 누군가는 행복하게 퀼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죠. 저희들의 꿈은 나중에 나이가 먹었을 때도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는 것이죠”//스카이데일리, 2017.07.01. 이기욱 기자//
장소 : 청사포 갤러리
일시 : 2021. 06. 05. –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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