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기사//
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24] 소름요 도자공 송중환
고구려 고분벽화 도자기에 재현한 장인, 2013-07-14, 25면
임진왜란 때 숱한 도공(陶工)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 배편을 기다리며 수용되었던 곳이라는 계곡에 설비된 소름요(小廩窯)를 찾아 기장으로 갔다. 읍내 입구에서 죽성 가는 좁은 길로 향하다 신앙촌 갈림길에서 월전마을 쪽 산허리를 오른다. 왼쪽 공동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소름요 간판을 따라가면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좁은 터에 소름요가 앉아 있다.
소름요는 마을에서도 한참 외진 데다 주위에 공동묘지까지 있어 기(氣)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서, 이곳에 살던 도공의 부인네들이 무서워서 나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들어온 도공마다 찐득하니 정착하지 못해 3년마다 주인이 바뀌고 있었다.
그곳에 송중환(宋中煥· 67) 씨가 입주를 결심한다. 때는 바야흐로 1983년, 37세 되던 해 그토록 잘 운영되던 광복동의 전통찻집 ‘소화방’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외진 이곳으로 찾아들었다.
그에겐 꿈이 하나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도자기로 재현해 보고픈 일념이 그것이다. 수차례에 걸쳐 읍소에 읍소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가족들을 설득했다. 마땅한 공방을 찾아 다니다가 발길 머문 곳이 바로 이곳 소름요였다.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의 도공들이 뱃길을 기다리며 머물던 곳이었기에 마음이 더욱 당겼다.
등요(嶝窯·비탈가마)를 설치한 계곡이름은 세탁골(서답골). 당시 끌려온 도공들이 빨래한 자리란다. 송중환은 마침내 이곳에서 내밀한 꿈을 펼쳐보리라 결심한다.
일찍이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고구려 고분벽화를 도자에 재현하기 시작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특히 벽화에 사용된 안료를 찾아다니다가 지쳐 흙일을 그만두고 농사일도 해보았다. 1993년 다시 시작했다. 드디어 벽화 재현 성공률이 30~40%나 되었다. 그러나 생계문제도 큰일이었다. 시내의 친구회사에 출근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언제까지고 의존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활자기를 만들면서 벽화 재현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일본 다카마스(高松塚) 벽화를 연구하여 재료와 기법을 현대 과학으로 풀어내는 일에도 동참했다. 1500년 전 고구려인이 사용했던 재료와 기법을 찾아 고군분투했다.
고분벽화의 숨은 비밀을 찾아 천착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나 됐다. 흙속에서 안료를 개발해 보는 등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석채(石彩)와 철채(鐵彩)를 찾아냈다.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한 ‘고려불화대전’에서 만나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를 도자작업으로 옮기는 일 또한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 언젠가는 일본으로 건너간 수월관음도 앞에 향을 피워 그 혼을 다시 모셔오고 싶은 강렬한 충동도 마음을 다스려 갈무리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부터 소름요가 유일하게 고분벽화를 재현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벽화에 숨어 있는 비밀을 캐내는 일을 하는 곳으로 말이다. 중국 땅에 속해 있어 훼손 정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고분벽화도 있다는데, 그런 의미에서라도 송중환 씨의 작업이 의의 있고 돋보이는 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행적을 찾아 기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들의 일본에서의 활약상을 답사하고 도조(陶祖)가 된 그 후손들을 찾아 옛 이야기를 채록해 왔다. 그리고 공방 마당에 조선사기장연구회와 함께 ‘무명도공추모비’도 세워 해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을 기려 차를 올리고 있다.
송중환 씨는 원래 중구 동광동 옛 KBS부산방송국 인근에 살았다. 3남 1녀의 둘째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광복동에 ‘묵향원'(소화방 전신)을 경영하면서 묵해 선생 서실에 나가 서예를 배우면서 만난 부인과 결혼한다. 31세 때이다.
비록 그림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본 일은 없으나 고분벽화를 자기에 옮기는 작업은 감성으로 해 나갔다. 백호도와 현무도, 주작도 등 사신도(四神圖)를 그리고 수렵도를 둥근 접시모양의 도기 위에 그려 나갔다. 벽화 분위기를 내어 그려 보고 소성하여 부족한 점을 찾아 이를 해결하려 하였다. 좁은 전시실 선반 가득히 이렇게 그려낸 벽화 재현 작품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1남 1녀 자녀들도 이 외진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장남이 아버지 일을 이해하고 제법 조언자가 되어 주어 은근히 기쁘다. 외로운 작업을 결심한 송중환 씨에게 더없이 위안이 되었다. 나라 안팎을 통 털어 고분벽화를 도자작업으로 재현하는 일을 하는 단 한 사람으로서 긍지를 갖고 고집스럽게 오늘도 정진할 따름이다.//주경업 부산민학회장//
장소 : 소름요
일시 : 2020. 09. 19.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