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문자는 진리를 추상개념을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이에 반해 그림은 형상을 통해 직관적으로 진리를 묘사합니다. 저는 그동안 상형문자로 대표되는 한자를 소재로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동시에 나타내기 위한 실험을 해왔습니다.
글자의 상징적 의미를 지워내기 위해서 글자의 형상을 상, 하, 좌, 우로 회전시키듯 겹쳤으며 화면 전체를 일정한 비율로 분할하여 작은 조각들로 채워 넣었습니다.
화면은 어지럽게 겹치고 채색되면서 문자보다는 형상에 가까운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글자들은 개념이면서 동시에 이미지가 되는 순환을 반복합니다.
이런 실험을 통해 저의 관심은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면서 결정되지 못하는, 혹은 끊임없이 결정이 반복되며 생겨나는 ‘경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자신의 존재 근거가 자신 안에 있지 않고, 자연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이루어지는 이 교차의 지점을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지점을 ‘경계의 공간’이라고 상정했습니다.
‘경계의 공간’이란 이것과 저것이라는 구분 짓기가 아닌 서로 교차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고 상생하며 공존하는 어떤 곳입니다.
서로 침투하고 충돌하면서도 어느 한쪽을 해체하지 않는,
사라지면서도 동시에 살아나는 그곳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변전의 공간인 경계의 공간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한편으로는 덧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질문과 욕망을 꿈꾸어 봅니다.//유현욱//
장소 : 한새 갤러리
일시 : 2020. 09. 16. – 0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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