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문//
오브제로 그려진 라인 드로잉
김찬일의 근작은 이전 작업에 비해 오브제성과 탈회화적 제스처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오브제와 회화가 가장 긴밀하게, 얇게 저며져서 이룬 독특한 피부를 보여주는데 그 피부는 촉각성과 시각성의 극화를 연출한다. 그것은 조각과 회화 사이의 경계에서 진동한다. 아니 그 경계성 자체를 은연중 무화시키거나 넘나들면서 조각도 아니고 회화도 아닌 듯 떠돈다. 그러면서도 그 두 가지 요소들을 한 몸으로 두르고 새로운 물성을 드러낸다. 옵티칼하고 키네틱적이며 나아가 부조적, 조각적으로 보이는 이 회화는 무엇보다도 옵 적 요소와 물성적 측면을 강하게 드리운다. 이미 이전 미술사에서 보여주었던 그 부분들과 연계되거나 분리되는 지점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최근 상당수의 회화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시각적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극사실주의적 그림의 유행이나 극단적인 시각 효과를 추구하는가 하면 장식적이고 강렬한 자극으로 충만한 그림들이 유행이다. 이전 옵아트의 영향에서 더욱 나아간 모종의 상황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웹상의 현란한 이미지 연출과 그 시각적 착시의 영향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기에 그럴 것이다. 동시대 회화는 컴퓨터상에서 만나는 일루젼과 시신경을 자극하는 환영적 요소를 다시 납작한 평면으로 불러들여 감각적인 일루젼과 망막에 호소하는 강력하고 새로운 단계의 이미지들을 마련하고자 한다. 디지털시대에 새삼 환영적, 일루젼이 강한 회화를 만나는 이유의 일단이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시 평면성과 일루젼이 만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회화는 결국 눈에 호소하고 시각을 교란하는 장이다. 일루젼에서 탈일루젼으로 다시 극단적인 일루젼으로, 그리고 새로운 일루전으로 이동하면서 회화는 그렇게 지속적으로, 정처없이 망막을 문제시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대의 다른 시각이미지와의 연관성 아래 다시 조율되고 재편되고 재정의되어 왔다.
근작은 이전 작업에서 더 나아가 화면 자체를 더욱 촉각적이며 진동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점에서 선으로 이동하고 있음도 눈에 뛴다. 이 화면은 그림이 서식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새로운 물질로 성형된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러니까 화면이라기보다는 지지체 자체를 독특한 피부/물성으로 만들어가는, 오브제화 시키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만난다. 그래서 고정된 이미지를 머금거나 작가의 개념이나 의도, 느낌 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질감을 지니고 망막에 우선하는 물질의 표면, 자동적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화면으로 만들어놓았다는 인상이다. 이 화면은 페인팅 된 화면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물질, 오브제 자체가 된 셈이다.
김찬일의 화면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의미를 읽고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을 무망하게 만든다. 모든 서술과 표현의 욕망이 접혀지고 사라진 화면이 여전히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우리들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심리에 잔상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전적으로 시각에 호소하는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기존의 방법론이 아닌 전적으로 새로운, 새로워 보이는 방법론과 과정을 구현해내는 작업에 대한 모색이 작가의 근작이다. 탈회화적으로 성형된 화면이지만 그것은 또한 회화만의 매력에 의존되는 편이기에 그렇다. 어쩌면 그것이 회화의 한 끝에서 다시 회화가 가능한 그런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연금술적인 공정을 통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그런 회화/탈회화를 만들어보려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박영택 (미술평론,경기대)//
장소 : 갤러리 미고
일시 : 2020. 08. 21. –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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