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최수환은 이번 개인전에서 ‘회원동의 밤’을 소환해낸다. 회원동은 작가가 오랜 기간 거주해 온 마산의 한 동네이다.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해온 동네의 곳곳에는 희로애락이 담긴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긴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동네에는 곧 철거를 앞둔 빈집들이 즐비했다. 외형은 아직 그대로인데, 그 내부에는 뼈대와 잔여물만이 남았다. 작가는 낯설고 생경한 풍경과 마주한다. 인적 없는 공간에 남겨진 가구, 문짝, 창문, 전등 등이 작가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있을 때 제 기능을 했던 물건들은 버려진 공간 안에서 정지된 상태로 머물러 있다. ‘밤’은 이러한 정지된 상태의 은유와 같다. 하지만 밤 중에 작은 인기척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수환은 멈춘 듯 보였던 어두운 밤의 미세한 움직임과 불빛을 전시 공간에 재구성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그 밤과 마주한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최수환의 작업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전시공간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최수환의 작업은 작품, 사람, 공간의 세 요소가 결합될 때 완성된다.
외형만은 남아있던 회원동의 빈집들은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재개발로 인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되었다. 최수환은 철거를 앞둔 빈집 담벼락에 붙은 번지표 철판을 떼어내 수집했다. 누군가 그곳에 살고 있음을 알리는 번지표의 숫자는 그 역할을 다했다. 수명이 다한 번지표는 기억의 집합체처럼 오픈스페이스 배 윈도우에 ‘이름’이라는 작품명을 하고 나란히 걸렸다. 1층 전시장 안에는 허공을 걷는 신발 ‘산책’과 철거된 집의 잔해 중 뼈대의 역할을 해온 철근을 벽면에 설치한 ‘새 이웃’이 전시된다. 서로 다른 시간 회원동을 거닐었던 작가의 신발 두 짝이 허공을 맴돌며 산책한다.
오픈스페이스 배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중간턱에 다다르면 작은 쇠구슬 작업 ‘방문자’를 만나게 된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구석에서 움직이는 작은 쇠구슬의 몸짓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단단한 쇠구슬이 바닥에 부딪히는 공명의 소리가 공간과 절묘하게 호흡한다. 다시 반 층을 올라가면 도르레의 움직임에 따라 백열등 하나가 방의 안과 밖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빈집에서 보았던 작은 전등 하나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 ‘유령가족’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불빛을 따라 공간을 새롭게 탐색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4층에는 전시장의 창문을 연장시켜 공간 내부로 끌어들인 ‘창문’이 있다. 창문틀과 같은 크기의 사각 큐브 구조물을 만들어 공간 안으로 침투시켰다. 사람이 사유공간을 넓히는 방식은 건물 외부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수환은 그와 반대로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외부로 향해있던 창틀이 내부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또한 창문은 공기나 빛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드나드는 통로인데, 작가는 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공기를 가두는 통로를 만들어 그 부피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였다. 같은 공간 한쪽 벽면에는 ‘거울얼굴’이 설치되어 있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한다. 작가의 표정이 반영된 자화상 같기도 한 이 거울은 추억의 공간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러면서도 변화된 회원동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동네의 거주자이자 관찰자로서 재개발 과정을 겪은 최수환은 그 과정에서 얻은 단상과 감각을 조각으로 작업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항상 사람이 전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같이 움직이면서, 작품과 공간에 대한 감상의 폭을 연장시켜준다. 공교롭게도 원도심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 한 오픈스페이스 배의 4층 공간은 작년 여름까지도 오랜 기간 사람이 살지 않던 방치된 공간이었다. 다시금 생기를 얻은 전시 공간 안에서 만나는 최수환의 작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최수환(b. 1979)은 2006년 창원대학교 미술학과(조각)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미술대학(Berlin University of the Arts)에서 조각 전공으로 2012년 석사 졸업, 2014년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수료하였다. 베를린에서의 개인전 ‘설치 Installation'(2012), ‘두 개의 문 Two Doors'(2015), 귀국 후 창원에서의 ‘함께-혼자 Together-Alone'(2017, 갤러리 리좀), 부산에서의 ‘유령연습 Ghost Practice'(2018, 공간 힘)에 이어 5번째 개인전 ‘회원동의 밤’을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선보인다. 최수환 작가는 2019바다미술제에 ‘하늘문’ 작업으로 참여하였으며, 현재 부산현대미술관 ‘Emotion in Motion'(~2020. 7. 26)의 참여 작가로 전시중이다.
장소 : 오픈스페이스 배
일시 : 2020. 05. 28. – 07. 25.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