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그동안 ‘경계의 공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 번의 전시를 가져왔다.
명확한 논리로 구분되는 이성의 세계에서는 경계를 통해 본질을 드러내고 그것을 정의 내린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사물의 본성을 경계라는 틀 속에 가두면서 다른 속성들을 제외시킨다. 본인은 이처럼 경계로 인해 소외되어버린 어떠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왔고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동양철학에서는 자신의 존재 근거가 자신 안에 있지 않고, 자연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본다. 모든 사물은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고 상대를 향해 부단하게 변화한다. 그러나 관계가 이루어지는 이 교차의 지점을 구체적으로 포착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흔히 그것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본인에게 ‘경계의 공간’이란 이것과 저것이라는 구분 짓기가 아닌 서로 교차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고 상생하며 공존하는 어떤 곳이다.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 벌어짐과 닫혀짐이 교차하는 지점을 ‘경계의 공간’이라 규정하고 이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배를 타면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배 멀미를 경험하게 된다. 반대로 오랜 시간 배를 탄 선원들이 항구에 도착해 육지에 닿으면 땅 멀미를 한다. 바다와 육지 두 공간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 멀미라는 공통의 출발점이 있다. 멀미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 육지와 바다의 공간을 경계 짓지 않고 두 공간을 이어나가며 확장하게 된다.
경계의 공간은 멀미처럼 아닌 이것과 저것이 가진 진동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서로 침투하고 충돌하면서도 어느 한쪽을 해체시키지 않는 다층을 발생시키기 위해 그림 속에서 문자와 풍경, 화면 테두리의 장식, 화면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끈 등의 이미지들은 병치되었다. 또 그림속의 문자는 그 자체로 개념이자 이미지가 되면서 결정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경계를 떠돈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한꺼번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 색들.
단 한가지의 색으로 규정되지 않는 다채로운 무지개의 색이 희뿌옇게 생각되던 경계의 공간을 채워놓았다.
무지개 끈은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아우르기 위해 화면에서 춤을 춘다.
사실 경계의 공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 광선의 쉼 없는 변전을 잡으려는 시도처럼 덧없는 욕심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도 불가능한 질문과 욕망을 꿈꾼다.//작가 노트//
장소 : 아이링갤러리
일시 : 2020. 02. 04. – 03. 0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