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사//
오픈스페이스 배는 좌혜선 작가의 4번째 개인전 ‘971 855 ••• 500’을 개최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장지에 분채, 목탄을 사용하여 사람살이의 가장 보통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은 그림으로 공감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 화두를 던지며 공감을 얻고자 한 작업을 선보인다. 신작 ‘monster dancing’ 시리즈 7점을 포함한 총 12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971 855 ••• 500
좌혜선의 이번 작업은 소설가 김훈의 칼럼 ‘아, 목숨이 낙엽처럼’에서 시작되었다. 김훈은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의 사망 통계를 전하는 뉴스를 보고 참을 수 없어 급히 글을 적어 내보냈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계산하여 대형/소형 참사로 구분하는 행태, 최소한의 안전망 미흡으로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목숨을 내버려두는 처사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
좌혜선은 이 글을 읽고 목숨의 대해 생각한다. 어제의 동료가 떨어진 자리에서, 밥벌이를 위해 오늘도 일해야하는 가혹한 생. 그 가혹함을 이기려 허우적대는 몸부림을 신작 ‘monster dancing’에 담았다. 밥벌이와 끼니는 좌혜선의 작업을 계속 따라 다닌다. 끼니를 먹어야 움직일 수 있고, 움직여 일해야 끼니를 먹을 수 있는 생의 굴레, 끼니 없이 자립할 수 없는 인체의 유약함을 이야기 한다. 전시제목 ‘971 855 ••• 500’은 정부에서 발표한 산재 사망자의 숫자에서 착안한 것이다. 2018년 산재 사망자 수 971명, 2019년 산재 사망자 수 855명, 2022년 목표 산재 사망자수 500명. 사망자의 수치가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좌혜선은 그 500개의 생에 대해 생각한다.
전시장 1층에서 선보이는 신작 ‘monster dancing’은 그 유약한 인체를 표현한다. 검은 목탄 바탕 안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신체가 하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마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을 한 신체는, 하지만 아직 살아있음을, 뼈와 살을 가진 사람이라고 외치듯 꿈틀거린다. 생을 향한 몸무림이다.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monster dancing’ 시리즈 또한 좌혜선의 이전 작업들에서 이야기해온 끼니와 삶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시장 4층에는 신작 영상작업 ‘일하는 몸’과 이전 작업들이 전시된다. ‘일하는 몸’의 영상 속 작가는 정확히 떨어지는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선을 긋는다. 박자에 맞추며 좌우로 크게 오가는 팔동작과 그 끝에서 만들어지는 굵은 선의 반복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몸을 써 일하는 노동의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냉장고, 여자’와 ‘부엌, 여자’등 4층 전시장에 함께 설치된 이전 작업을 통해 좌혜선이 이야기하는 끼니와 밥벌이의 출발점과 그 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좌혜선은 제주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2010년 스페이스선+, 2015년 이랜드 스페이스, 2018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0년 대만 국립국부기념관, 안산 단원미술제 전시관, 2012년 서울 이랜드스페이스, 2016년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그룹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작가노트//
화면에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할 때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칠 것 같은 보통의 사람입니다. 그는 벌거벗고 냉장고 앞에 서 있기도 하고, 어두운 길가를 홀로 걷기도 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람의 생을 명확히 그려보려 애썼습니다. 어떠한 은폐나 가식 없이, 진실의 어떤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monster dancing 작업은 소설가 김훈의 칼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아, 목숨이 낙엽처럼’입니다. 칼럼을 통해 김훈 소설가는 고공 건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건물 외벽 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비계(쇠기둥)가 부실해서, 혹은 비용을 이유로 비계 사이의 발판을 설치하지 않아 추락해 죽은 사람이 한 해 동안 300여명에 이른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어제 동료를 잃은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동료가 떨어져 죽은 일터로 오늘 밥벌이를 나가야 하는 그의 생을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진창인 세상에서도 저항할 수 없는 끼니의 숙명에 대해,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슬프도록 유약한 인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두꺼운 벽 없이도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면,혹은 입으로 음식을 넣지 않아도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었다면,그 300명은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인체의 한계가 이토록 명확해서, 생을 향한 몸부림이 그렇게 간절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곱씹어 봅니다. 밥벌이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은 자꾸만 어긋난 방향으로 고꾸라집니다. 유희 없는 그로테스크한 동작만이 세상을 가득 메웁니다. monster dancing 작업은 그러한 생의 풍경을 표현하고자 한 이미지입니다.
정부는 2019년 산재 사망자 수를 855명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는 전년도의 971명보다 116명 줄어든 숫자입니다. 정부는 또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 수를 1년에 500명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도 했습니다.(전시 제목971, 855, 500의 의미)
그래서 나는 다시, 앞으로 밥벌이의 장소에서 죽어야 할 500명에 대해 생각합니다. 971보다 116이 작아서 다행인 855에 대해, 최소한의 죽음으로 취급될 500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합니다. 안심을 위해 목표가 된 죽음의 수치가 기막혀서, 나는 500개의 생에 대해, 그 한사람에 대해 끝없이 되뇌어 봅니다.//좌혜선//
장소 : 오픈스페이스 배
일시 : 2020. 02. 07. – 03. 14.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