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展(갤러리 공감)_20191129

//작가 노트//
장자의 호접지몽으로부터 화지몽(花之夢)이란 명제를 얻었다. 장자는 현실과 꿈의, 진실과 그렇지 않은 것 등 확실하지 않은 삶을 이야기 하고 있고 우리들도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동양의 문자들은 원래 세로쓰기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를 하였으니 읽기에 따라서 ‘화지몽’은 ‘몽지화(夢之花)’가 되기도 한다.

꽃은 오래전부터 자체의 아름다움과 상징성으로 작품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다고 자연의 아름다움 중 최고이고 아름다움의 절정의 상징이다. 이는 꽃의 아름다움을 희망하는 인간들의 욕심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인간들의 욕심은 스스로 꽃이 되기를 원한다. 꽃의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에 찬사를 보내기를 즐긴다. 일반적으로 꽃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하여 그 시들어가는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다들 활짝 핀 꽃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꽃이 피고 시들어감으로 새로운 생명은 탄생하고 자연은 계속하여 끊임없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꽃은 절정이 아니라 씨앗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마지막 아름다움인 것이다. 인간은 꽃과는 다른 아름답게 시듦을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꽃 중에서도 전통회화에서 주로 다루었던 모란, 동백, 국화를 소재로 선택하였다.

꽃 중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예로부터 길상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부귀란 물질적인 여유와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충만하게 균형을 이루고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많은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풍요만을 따라가다 본질적 행복은 잃어버리고 상실감을 채우기 위하여 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며 채워지기만을 바란다.

동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동백의 붉은 꽃잎과 꽃술, 짙은 잎에서 오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통하여 그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한 의도에서이다. 동백의 꽃말은 고고한 이성이다. 다음의 세대를 위해 과감히 자기를 버릴 줄 아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욕심을 위해 불나방처럼 날아다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꽃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는다.

국화는 선비의 이상인 군자의 인고와 절개에 비유된다. 이를 통하여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배경의 색은 인간의 꿈과 이상을, 반복되고 있는 자개로 된 선은 많은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화면의 공간감과 색의 대비에 의한 인상과 그림이 가지고 있는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작가 노트//

장소 : 갤러리 공감
일시 : 2019. 11. 29. – 12. 27.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