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展(피카소화랑)_20191212

//글 정은영//
김동영의 신작 ‘Embracing’은 짧게는 지난 10여년의 탐색을, 길게는 30년이 넘도록 천착해온 주제와 형식을, 부드럽게 보듬어 안아 넉넉하게 품었다. 2014년 미국 산타모니카와 일본 사바에시(市)에서 개최된 개인전 이후 햇수로는 1년 만이지만, ‘Embracing’이 품에 안아 펼쳐 보이는 내적인 시간은 그 폭이 상당하다. 오랜 기간의 작업을 관통해온 생명에 대한 찬미와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긍정이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캔버스의 안팎을 들고 나는 이번 신작은 그 결이며 품이 더 없이 맑고 넓다.

밖으로 ‘펼쳐 열린’ 캔버스가 안으로 ‘품어 안은’ 것은 존재의 처소요 생의 숨결이다. 가상의 회화적 공간 대신에 숨결과 기운이 감도는 실체적인 존재의 터가 열려 있다. 숨결과 기운은 이미 네 잎 클로버를 모티프로 한 지난 연작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바였지만, 이번 신작에서 작가는 조형적인 틀과 구성을 한층 자유롭게 ‘열어 놓고’ 이질적인 재료와 기법을 더욱 과감하게 ‘감싸 안아’ 유례없이 두드러진 개방(開放)과 포용(包容)의 태도를 취했다. 무심코 일별하는 경우 전작들과 사뭇 달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얼핏 단절처럼 보이는 이 유례없는 개방과 포용은 오히려 그 오랜 탐색이 시작된 최초의 시원(始原)에 연결된 연속이라 해야 옳다. 30여년 전 미국에서 돌아와 개최한 국내 첫 개인전에 즈음하여 예술은 “내 모든 것을 바치는 자신과의 서약”이라 고백하며 맺었던 그 오랜 약속을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이행(履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미적 힘”과 “신앙의 힘”이야말로 존재의 두 근원이자 동일한 원천임을 천명하며 예술과 신앙이 자신 안에서 합일(合一)하기를 소망하였다. 1983년 작가 노트. ‘김동영’ 개인전, 전시 카탈로그, 서울: 미국문화원, 1983년 9월.
그 오랜 약속과 소망을 담은 이번 신작에서 바야흐로 “미적 힘”과 “신앙의 힘”은 ‘서로에게 속하며 동시에 자체의 자유를 구가하는’ 아름다운 공속(共屬, Zusammengehörenlassen)의 관계를 펼쳐 보인다. 개방과 포용의 태도는 바로 이 공속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니, 보듬어 안아 서로를 품는 ‘Embracing’이라는 명명이 제안된 이유가 헤아려진다.

품다: 공속의 원리
긴 세월을 품어 안은 ‘Embracing’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는 후(後)이자 귀결(歸結)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선(先)이요 항상 모든 것의 앞(前)에 놓이는 계기(契機)의 차원에 존재한다. 계기란 어떤 사태가 일어나게 하거나 기존의 상태가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인 바, 계기로서의 ‘Embracing’은 시원의 약속과 소망을 상기하며 끝없는 생성과 변화를 개시하는 ‘계속되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작업이 분방한 붓질과 선명한 색채로 생의 에너지를 발산했다면 ‘Embracing’은 넉넉한 여백과 담담한 무채색이 더해져 연륜과 지혜를 품어 안았다. 눈에 띄게 커진 캔버스는 숨결이 들고 나는 넓은 터가 되어 환하게 트여 있고, 작은 네잎 클로버는 거대한 나무로 변형되어 그 넓은 터에서 자라나고 있다.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그어낸 선(線)과 경계에 구애받지 않은 면(面)은 그간의 작업에서처럼 생생한 몸짓과 순간적인 시간성을 담고 있지만 표면 너머의 넓은 터에 스며들어간 느낌이 더 강해졌다.
‘Embracing’의 생성과 변화는 ‘서로 함께 속하는’ 아름다운 ‘공속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크게 보아 형식 차원에서 시간-공간의 공속이, 내용 층위에서 존재-진리의 공속이 발견되는데, 이는 다시 조형의 힘과 생성의 이치가 공속하는 전체 안에서 조화롭게 합일하고 있다. 이전의 클로버 풀잎이 실루엣이나 그림자로 출현하거나 거대한 나무로 솟아올라 있어 과거-현재의 시간적인 지속을 유지하는가 하면, 실루엣을 처리한 즉흥적인 선과 거목을 이룬 넓직한 면은 다시 박음질된 실과 드리워진 레이스로 확장되어 공간적인 변화-생성의 진폭을 넓혔다. 선과 면이 실과 레이스로 전개되는 강한 변주(變奏)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직조된 레이스가 클로버 풀잎을 기본 패턴으로 하여 짜여 있고 실과 끈이 이미 초기 작업에서부터 의미 있는 재료로 사용되었음을 기억한다면, 공간적인 확장이 시간적인 지속에 속한 채로 그 자체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공속관계를 두고 ‘존재의 진리를 향해 인간본질이 생기(生起)하는 연관’이라 일컬었다. 특히 그는 공속이란 진리를 향해 자신을 ‘실어-나름(Zu-trag)’으로써 진리와 존재가 ‘자기 안에서 근원적으로 화합하는 모아들임(die in sich ursprünglich einige Versammlung)’이라고 설명하였다.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신상희 옮김,『언어로의 도상에서』, 서울: 나남, 2012.
진리를 향해 나 자신을 실어 나름으로써 그 진리를 내 안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공속은 따라서 나와 진리가 ‘서로에게 함께 속하여 친밀하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것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것에게로 나를 실어 나른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진리는 개념으로 파악되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자신을 실어 날라’ ‘내 안에서 스스로 섭리하도록’ 해야 하는 존재-합일의 대상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진리가 존재자 안에 섭리하여 그 존재자가 변화하고 전환되었을 때 비로소 진리와 존재의 공속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Embracing’ 연작의 형식적인 변화는 ‘진리가 스스로 존재 안에서 현성(現成)하게’ 하려는 ‘근원을 향한 전환’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기호를 넘어 응답으로
‘Embracing’ 연작에서 특히 주목되는 실(絲)과 글(logos)은 바로 이 ‘실어-나름’으로부터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캔버스를 뚫고 들어간 실이 물리적인 차원에서 나를 실어 나르며 시간-공간의 공속을 이루고 있다면, 밝게 열린 터에 길을 만들며 밀알처럼 퍼져있는 글은 고백하고 찬미하는 말과 음성에 나를 담아 존재-진리의 공속을 실현하고 있다.
캔버스에 박음질된 실은 오래 전 선의 이미지나 생명의 상징으로 콜라주 화면에 부착되었던 실과 끈에 연결되어 있다. 작가에게 선, 줄, 끈, 실은 서로를 은유하거나 대체하며 오랜 세월동안 중요한 모티프와 주제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1988년 ‘불타는 생명줄’등 연(鳶)과 연줄을 모티프로 한 일련의 회화를 선보였던 작가는 “나는 내 작업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늘고 긴 줄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1988년 작가 노트. ‘김동영’ 개인전, 전시 카탈로그, 서울: 문예진흥원 미술관, 1988년 10월.
당시 생명과 존재, 진리와 본질에 연결되는 비가시적인 끈으로 언급되었던 줄은 이제 ‘Embracing’에서 엮고 꿰매고 수놓는 본래 그대로의 실로 등장한다. 조형적으로는 화면의 공간을 가르며 에너지의 흐름을 표시하거나 풀잎의 실루엣이 되어 점선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무언가를 대신하는 기호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천을 뚫고 들어가 화면의 앞에서 뒤로, 다시 뒤에서 앞으로 들고 나며 실제적인 실로 존재한다. ‘자신을 실어 날라’ 캔버스를 관통하는 실은 회화의 표면과 이면을 뗄 수 없는 하나의 실체로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에게로 자신을 실어 나르는’ 공속의 행위는 커다란 캔버스에 밀알처럼 흩어져 있는 텍스트에서 그 절정에 이르고 있다. 넓게 열린 터를 과감하게 ‘품어 안아’ 사면팔방의 여러 각도에서 길을 열듯 써넣은 복음서의 구절들은 찬양의 목소리가 되어 경계 없이 메아리친다. 밝은 광목 빛이나 깊은 먹빛 속에서 ‘은혜’ ‘기도’ ‘선지자’ ‘영광’ ‘당신’ 등의 근본-언어가 출현하며 존재의 처소에 생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서약’으로 시작된 진리에 대한 작가의 공속은 마침내 ‘진리를 향해 자신을 실어 날라 서로를 품어 안는’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진리가 그 안에서 스스로 섭리하도록 한 것이다. ‘Embracing’이 시각적 기호나 미적 상징을 넘어 서약의 이행이자 부름에 대한 응답인 이유다.//정은영 (미술사 박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장소 : 피카소 화랑
일시 : 2019. 12. 12. –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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