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효展(금련산갤러리)_20191015

//작품 소개//
색즉공(色卽空) 공즉색(空卽色)

이번 제9회 개인전의 주제는 색즉공(色卽空)이다. 재가(在家)불자(佛子)의 생활 정진을 통해 증득(證得)한 공(空)과 색(色)의 이치를 2차원 평면 화폭에 표현해 보고 싶었다. 불교의 중핵(中核) 이라 할 대 명제를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에 불과 하겠지만, 대중에 던지는 화두(話頭)로 생각하고 제작 전시키로 했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핵심 내용으로 원문이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즉 일체의 물질이 공(空)이요, 수상행식(受想行識) 모두가 공(空)이다. 공(空)의 지혜는 설명을 들어 알기보다는 수행을 통해 증득해야 정확히 이해가 된다. 현대 물리학 적으로 해석할 수도 없고, 깨달은 선지식의 해박한 설명도, 범부 대중의 마음에 이해를 구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공(空)의 개념 역시 원시 불교로부터 현대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불보살과 학자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어 오고 있다. 바닷물에 비유하면 공(空)은 바다요 색(色)은 파도다. 공(空)은 숨어있는 차별 없는 본질이며 색(色)은 나타난 차별적 현상이다. 공(空)의 의미를 나는 가끔 꿈을 들어 설명한다. 어느 으스스한 길을 가다 어느 길모퉁이를 돌아가는 데 괴한이 갑자기 나타나 긴 칼을 번쩍 드니, 나는 무서워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뛰는데 갑자기 눈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백척간두일보진(百尺竿頭一步進)할 것인가 아니면 괴한의 칼에 난도 질 당할 것인가 순간 고민 끝에 “에라,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칼에 찔려 고통당하는 것보다 뛰어 내림이 옳다.”하고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추락하는 아찔한 느낌에 움츠려 들다가 잠시 후 스윽 슥 허공을 밟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 걷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랍고 즐거워한다. 칼 든 괴한은 간 곳 없고, 풍경이 아름다운 들판을 꽃향기를 맡으며 저 앞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어떤 사람 앞으로 바람같이 걷고 있다.

이 한 편의 꿈을 깨고 난 뒤 현미경 보듯이 분석해 보자, 꿈속에서 꿈인 줄 깨닫고 각성(覺醒)한 상태에서 관찰해 보자. 나(我)가 분명 있는데 물질적 한 물건도 없다. 생시 같은 모든 상황 즉 청황적백(靑黃赤白), 방원장단(方圓長短), 대소원근(大小遠近)이 분명하였고, 소름이 돋는 으스스한 풍경도, 칼을 든 괴한도, 튼튼히 밟고 달려 온 땅도, 천 길 낭떠러지 허공도, 꽃 향기 나는 길도 모두다 실체가 없는 허상(虛像)이요, 한 물건도 아닌 공(空)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옷 입고 신발 신고 손가락 열 개가 분명한 내가 있었고, 두렵다는 생각, 도망치는 내 행동과 스산한 주변 상황이 실상(實像)으로 뚜렷함을 느꼈으니 이것이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아니겠는가. 진실히 한 물건도 없는 공(空)한 상태임을 지혜로 자각하면서 묘하게 존재함을 보니, 진공묘유의 오묘한 진리를 증득함이라. 두려움 대신 지혜의 용기가 솟아나고, 어떠한 장애도 나를 구속할 수 없는 절대자유를 체험하게 되니, 사물과 사물에 장애가 없고, 사물과 이치에 걸림이 없으니, 두려움 없는 절대 저유를 증득하게 된다. 한 물건도 없다는 공의 지혜(知慧)인 각성(覺醒)을 놓치지 않으면 갖가지 확인 공부를 하게 되니,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뚜렷하지만 공(空)임을 깨닫게 돠고, 어떤 장애물이나 벽도 허공같이 통과할 수 있으며, 무거운 바위를 들고 물위를 뛰어가도 빠지지 않고, 허공을 날라 순식간에 먼 곳에 오를 수 있으며, 땅 아래로 내려가 보고자 하면 곧 허공같이 뻥 뚫려 지하의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경험한다. 주먹으로 바위에 글을 새길 수도 있고, 어떤 별에도 내 스스로 로켓보다 더 빨리 도달해 법계의 딴 세상을 경험할 수가 있어, 일념으로 행하면 바로 이루어지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체험하게 된다.

보아도 봄이 없고,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고, 해도 함이 없다는 선지식들의 법어가 바로 진공 묘유를 설명한 것이다. 진공묘유를 증득(證得)하려면 화두(話頭) 일념으로 수행하여 의식을 갖고 무의식으로 삼매(三昧)에 들어가 법계(法界)에서 모든 공부를 확인하는 방법과, 행주좌와 (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화두일념 수행이 지극해지면, 자도 잠이 없어 꿈속에서 꿈인 줄 알게 되니,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진공묘유를 깨닫게 되고, 이를 확인하는 경험들이 곧 마음공부의 쌓임이 된다.

색과 공의 상태를 동양철학 음양이론(陰陽理論)으로 해석하면, 색(色)은 양(+)이고 공(空)은 음(-)이며 진공(眞空)은 음(-)이요, 묘유(妙有)는 양(+)이다. 법계(法界)는 음양의 조화로 수많은 인연(因緣) 따라 색이 공으로, 공이 색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도 마찬가지다. 낮은 양(陽)이요 색(色)이며 묘유(妙有)요 드러남이다. 밤은 음(陰)이요 공(空)이며 진공(眞空)이다. 어제와 오늘 이라는 시간개념도 그러하여 현재란 과거 인(因) 즉 공(空)의 과(果) 즉 색(色)이며, 미래 결과(結果) 즉 색(色)의 원인(原因) 즉 공(空)으로 이어나가게 되니, 이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리(法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줄 안다. 형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본체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생사(生死)또한 색공(色空)이니, 생(生)은 드러남이요 양(陽)이고, 사(死)는 숨는 것이요 음(陰)인 것이다. 그래서 산 사람에게는 색깔 있는 꽃을, 죽은 사람 영정에게는 흰색이나 은색 같은 무채색 꽃을 선물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하루도 마찬가지다. 낮은 양(陽)이요 색(色)이며 묘유(妙有)이다. 밤은 음(陰)이며 공(空)이요 진공(眞空)이다.

내가 그린 그림은 음양의 짝이 있다. 색채로 들어난 형상과 무색의 근본 자리, 두 개로 짝 지웠다. 색이 있는 것은 나를 드러냄이요, 양(+)이며 묘유(妙有)이고, 무채색의 형상은 나를 숨기는 것이며, 음(-)이요 진공(眞空)으로 표현했다.

사람은 오랜 윤회를 통해 수많은 인연 따라 공으로 색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노닐면서 좋은 것 궂은 것 온갖 경험을 한 식(識)이 깊은 내면에 잠재해 있어, 무의식적으로 그려보고 만들려는 표현의 속성이 있다.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편리하고 멋진 형상을 표현해 보려는 행위는 이 세상을 만드신 조물주의 근본 마음과 같다. 그리려는 행위, 만들려는 행위 자체가 창조로 직결됨이 사람마다 조물주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도 표현 행위도 무상(無常)이면서 실상(實像)이니, 현재의 삶 자체를 허망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게을러도 안 되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정진(精進)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색 자체가 공(空)이지만, 공(空)은 인연 따라 언제든지 다양한 색(色)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간단한 몇 점의 그림으로 색즉공(色卽空)의 오묘한 진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각박한 삶에 지친 오늘의 사람들에게 청량한 관심과 의문점을 던져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번 시도해 보았다. 다행히 그림의 표현 기법이 형태의 외곽선(outline)이 2~3mm 돌출된 입체 부조 같은 선이 뚜렷해 흰색과 베이지색 또는 은색 등 무채색으로 공(空)을 상징해 보았는데, 남은 흔적이 뚜렷해 비구상적인 느낌을 주는 조형적 표현이 가능하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과 인생 관계, 표현의 철학적 의미에 관심이 생긴 대중들이 다소나마 깨달음의 길로 이어지는 인연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장덕 백낙효//

장소 : 금련산갤러리
일시 : 2019. 10. 15. –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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