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연展(정준호 갤러리)_20190612

이향연, 심상의 색채

서성록(미술평론가)

“나의 작품은 실재적인 자연이나 사물의 재현보다는 주관적인 관념을 연출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심상의 움직임에 집중하여 이를 서정적으로 나타낸다. 심상의 움직임을 표현할 때 형태보다는 색채를 매개로 하되 색과 면을 조합하여 추상적인 조형언어로 실어낸다.”(작가노트 중에서)

이향연의 말대로 그는 작업을 할 때 색채를 중요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색채의 중요성은 16세기 ‘디세뇨와 색채’(disegno e colore)의 논쟁에서 부각되었다. ‘디세뇨와 색채’ 논쟁은 작품창작에서 회화의 가치를 선과 색의 우열을 가리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샤를 르 브랭(Charles Le Brun)으로 대표되는 소묘 중심의 프로렌스파(Florentine)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로 대표되는 색조 중심의 베네치아파(Venetian)의 대립 구도로 요약된다. 이 논쟁은 내륙과 해안이라는 두 지역의 자존심 다툼을 넘어, 시각예술이 자연 모방에 중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조형 인자가 갖는 중요성에 중점을 둘 것인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이향연은 형태보다 색채를 중시하지만 색채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태의 매개물로서 색채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색채의 자율성이란 측면보다 정서를 표출하는 통로로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색채를 물체의 색에 종속된다고 보거나 순수색채의 추구라는 지점과 그의 작품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의 화면에서 색채는 여러 색깔의 조응 속에서 펼쳐진다. 즉 대비와 음영 법에 의해 색의 음조를 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수법을 구사하는 것은 색의 특성에 대한 고려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삶의 무대에서 전개되는 마음의 작용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예외 없이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는다. 이 희로애락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향연은 이것에 주목하여 우리의 삶의 부침, 즉 감정의 양태를 화폭에 실어내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낮은 음조의 색상은 침잠된 감정을, 높은 음조의 색상은 유쾌함과 산뜻함을, 푸른 색조는 나지막한 서정을, 노랑색조는 삶의 의지를, 보랏빛은 인생의 신산함을 각각 암시해준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작가의 몸짓이 드로잉의 형태로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이를 통해 화면에 생기와 활력을 줌과 동시에 작가의 호흡을 느껴볼 수 있다. 즉 작가가 선을 긋는다는 것은 형태를 묘사하는 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지문을 남기듯이 나의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같다. 그것이 있기에 개별성과 특수성을 갖게 되는 셈이다.

이향연의 작업은 순도 높은 색조에 눈길을 빼앗기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지지체의 구조’가 작품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지지체’는 일종의 ‘서식지’와 같은 것으로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모든 것은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생명체가 새 싹을 피우고 꽃망울을 맺으며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출발점과 종착지도 그의 지지체를 통해서이다. 이점은 화면의 정황을 살펴볼 때 좀더 분명히 드러난다. 견고한 평면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밑칠을 하고 균질화된 평면 위에다 모델링 페이스트, 돌가루 등을 부착하여 요철효과를 낸다. 그 다음 붓질을 가볍게 하거나 날카로운 나이프로 긁어 여러 표정을 부여한다. 그 다음에 오브제(골판지, 마대, 종이)를 부착하여 여러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안겨준다.

이렇게 지지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바탕이 그림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즉 바탕 없이 표면이 존립하지 않는다는 명료한 조형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바탕이 견고해야 그 위의 건축물이 안전하듯이 튼튼한 지지체를 확립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겹의 레이어를 조성하고 화면에 여러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을 꾀한다. 이때 이질적인 것들은 차이를 노출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침과 대조와 충돌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는 데에 주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향연의 회화는 크게 색채와 질료의 어울림으로 특징지어진다. 색채가 작가의 정서체계와 잇대어져 있다면 질료는 그것의 뼈대, 즉 삶의 무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심상의 움직임을 표현할 때 — 색채를 매개로 한다”고 한 것은 색채를 감정의 대리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대리인은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심부름꾼으로 본인의 의사를 충실히 전달할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여러 색채의 진폭은 삶의 무대에서 조우하는 각종의 정념(情念)과 무관하지 않다.

색채의 진폭과 대조에서 나오는 울림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애잔함이나 희열, 절절함과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회상과 추억과 아쉬움, 향수, 고마움, 사랑, 슬픔, 고독과 같은 감정들과 얽혀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감정은 우리 인생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형성하는 중핵적인 요인이다. 이향연이 이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의 회화는 한편의 심상의 색채회화, 즉 추상적 언어로 풀어낸 내면의 서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서성록//

장소 : 정준호 갤러리
일시 : 2019. 6. 12. –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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