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을 보내며
이번 해에 시작하는 개인전의 제목을 다듬었다.
‘멀리서 온 편지 a letter from afar’
왠지 먼 곳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작업실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물감을 묻혀 눈물 한 방울 크기의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중첩되어 종국에는 그림이 아니라 오래 함께한 사물로 완성되는 기분이다. 대개의 작업이 그렇다. 물감과 종리, 면천이나 마, 염색과 바느질, 사진 등 각각의 재료와 방법들이 어우러지거나 친숙하게 되어 마음에 드는 작업이 나오려면 종종 실패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삶의 질곡을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에 이르기를 오랫동안 염원해왔는데, 어쩌다 인연이 되어 내 작업을 보게 되는 이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이 언젠가는 ‘영원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닷가의 바위에 붙어서 사는 석화(石花)의 껍질에는 흐른 시간의
증명과도 같은 파도와 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처럼 굳건하게 풍파를 견디어낸 사물에게서 나는 묘한 아름다움을 본다.
삶의 시간은 힘들지만, 그 현상들은 왔다가 또 사라져 가고,
본래의 우리는 투명한 빛과 같이 찬란한 존재라는 자연의 일깨움.
한 방울의 눈물이 크리스탈의 빛으로 변모하기를.
변화와 거듭하는 현상에 내재되어 있는 불변의 영원성.
그 바다와도 같은 피안에 이르기를.
먼 곳에서 편지를 쓴다.
2019. 초봄. 문주영
장소 : 갤러리 폼
일시 : 2019. 5. 31. –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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