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꽃_원형적 상징을 해체하는 시각적 알레고리
미술평론가 김성호
꽃은 오랫동안 생성소멸(生成消滅))하는 자연을 표상하는 ‘원형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전두인에게서 꽃이란, ‘잃어버린 꽃’이라는 작품명에서 살필 수 있는 것처럼, 레테(Lethe)의 강 저편에 두고 온 현대인의 순수, 이상 또는 동심으로 치환된다. 이처럼 그에게서 지극히 개인 상징으로 치환된 꽃의 의미는 그의 회화 곳곳에 상징과 암시를 매개로 하는 시각적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먼저 한 떨기 꽃을 담고 있는 화병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에서 우리는 그의 알레고리 전략을 발견한다. 자유의 여신상, 100달러 지폐, 그리스 시대의 전투 장면, 전투기와 탱크 등 인간 문명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미지를 작가는 마치 상감 기법으로 새긴 전통 문양처럼 화병의 표면 위에 천연덕스럽게 배치해 놓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은 작가에게 있어 순수/이상을 상실하게 만든 주원인들이자, 순수/이상과 도무지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벤야민(W. Benjamin)에 따르면 알레고리란 건설과 파괴, 미몽과 각성, 실재와 허구처럼 ‘화해할 수 없는(혹은 화해하지 않는) 대립항 속에서 생겨난 예술 형식’이다. 그러니까 앞서의 문양들은 화병 속에 ‘꽂힌 꽃들’이라는 이미지와 순수/이상과 같은 개념과 반립(反立)하면서도 일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알레고리의 순간을 창출한다. 정원의 군집화 뒤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피사의 탑이나 그리스 신전의 이미지들은 또한 어떠한가? 이들 역시 꽃과 대면한 반립과 긴장 관계를 통한 알레고리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편, 화병 옆에 던져지고 있는 주사위나 큐빅의 이미지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은 주사위라는 ‘우연’과 큐빅에 대한 ‘이성’이 싸우면서 상징과 암시를 통해 만드는 시각적 알레고리의 대표적 이미지들이라 할 것이다.
알레고리가 그리스어 ‘다른(allos)’과 ‘말하기(agoreuo)’의 합성어 ‘알레고리아(allegoria)’로부터 유래했듯이, 그의 알레고리적 회화에서 다르게 말하기의 방식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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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에서 원관념을 떼어 버리고 보조 관념만을 남기고 사라지거나, 이미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상징과 달리, 알레고리는 이미지 위에 자신의 몸을 녹이고 상징이 떼어 버린 원관념을 소환시켜 보조 관념을 보듬어 안는다. 결국 전두인의 작품에서 ‘꽃’이라는 원관념이 화면상에 주요하게 등장하지만 정작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알레고리로서의 ‘순수/이상’이라는 보조 관념에 관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의 작업에서 주요하게 대두되는 창작의 화두는 꽃그림이라는 형식에 있지 않고 그것의 배면에 은밀하게 숨겨둔 “화려하게 치장되고 굴절되어 버린 현대인의 정서”라는 내용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패널 위의 건축적 구조물은 유리 조각을 중첩시켜 쌓아 올려 만든 까닭에 뒤편으로부터 투영되는 꽃 이미지는 굴절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화려하게 치장되거나 굴절된 채 수용된 꽃의 원관념과 그것의 보조 관념(개인 상징이기도 한)인 ‘순수/이상’의 의미를 성찰하자는 작가의 회화적 제스처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따라서 꽃은 그의 회화 전면에 부상한 주요한 형식임에도 관객의 ‘회화 읽기’의 시간 동안 점차 사라지고 ‘순수/이상’의 메시지만 또렷이 떠올려지게 되는 것이다.
진부한 소재로 간주되어 온 꽃을 오늘날 시대에 주요한 미적 형식으로 가져와 자신의 독창적 회화를 개척하고 있는 전두인의 작업은 모더니즘 시대에 사멸한 알레고리의 미학을 의미심장하게 소환해 오늘날의 살아있는 미학으로 정초한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고 노래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나타난 ‘존재적 의미의 변환’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잃어버린 꽃’이라는 화두는 이제 상실로부터 존재의 의미로 나아간다고 하겠다.//전두인 15회개인전 서문 김성호(미술평론가)글에서 부분발췌//
- 장소 : 갤러리 GL
- 일시 : 2018. 12. 30. – 2019.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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