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론//
신원정(미술사)
시작은 여행이었다. 2013년 미얀마의 인레 호수를 방문한 작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한편,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멋진 풍광에 가려지는 현지인들의 치열하고 척박한 생활에도 매료되었다. 자연과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삶의 편린들은 이후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요 테마가 되었다.
김덕진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회화적이다. 단순히 작가가 2차원적 평면을 작품 활동의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 아니다. 회화 매체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투영되는 그의 그림은 재현 행위의 의미, 재현 대상과 응시 주체와 같은 묵직한 미학적 논의를 담는다. 그것은 감상자와의 거리에 따라 구상으로도 또는 추상으로도 읽힌다.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보는 것 그 자체가 회화의 주제라고 선언한 모더니즘의 전통에 동시대성이 덧씌워졌다. 캔버스에 기록된 (작가의) 시각 감각과 그림을 보는 감상자의 시지각이 교차하거나 겹치거나 또는 평행하면서, 이미지의 가상적 중첩이 발생한다. 김덕진의 회화는 다양한 미술사적 유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현실에 기반을 둔 제재,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에도 치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온 작가의 성향은 사실주의 전통과 맞물리고, 신비롭고 모호한 자연, 실루엣으로만 처리된, 배 위 어부의 모습에서는 19세기 말 유럽의 예술계를 잠식했던 상징주의가 연상된다. 생소하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의 몽환적 분위기는 또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도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변환하는 김덕진의 그림은, 모더니즘으로 야기된 회화의 정체성과 관련된 역사적 논쟁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회화 장르의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각인된 특정한 때와 장소에 시각적 물성을 부여함으로써 여행애호가라면 한 번쯤 가 보았거나 혹은 TV를 통해 간접 체험했을, 설사 호수의 존재를 모르는 이에게도 어디엔가 있을 법하게 여겨지는, 낯설지만 친숙한 시공간을 창조해냈다. 실제로 존재하기에 현실적인, 그러면서도 몽환적 정취가 비현실적 여운을 남기는 ‘지금 여기’는 감상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그림들은 작가의 개인적 기억을 초월한 보편적 추억의 장으로 확장된다.
김덕진에게 회화는 오래 알아온 벗과 같은 존재다. 단순히 (직)업으로 삼는 일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 그는 치유 받고 힘을 얻으며 더 성장한다. 요동치는 일상의 여파로 흩어진 사유의 날줄과 씨줄을 모아 인내하며 유유히 엮어낸 푸른 ‘색채-공간’으로 작가가 이제 우리를 초대한다. 잠시 어지러운 일상을 내려놓고, 부드럽게 일렁이며 서로 녹아드는 맑은 하늘과 물의 결들 사이로 침잠해 보라 유혹한다. 자, 당신은 저 청아한 화면 속으로 빠져들 준비가 되었는가?//신원정//
- 장소 : 갤러리 아리오소, 아트그라운드hQ
- 일시 : 2018. 12. 10. – 12. 16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