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기사//
날줄과 씨줄 엮듯… 화폭에 담아낸 ‘해운대’
날랜 솜씨로 회를 써는 난전 아주머니, 날쌔게 해변도로를 달리는 스쿠터 탄 남자, 날개 단 듯 바다 위를 달리는 보트 위에서 함성을 지르는 피서객들. 한재용 작가의 그림은 활력이 넘치는 부산의 정서와 맞닿는다. 부산 사람들의 재빠른 손놀림과 힘찬 몸짓에 인공물들까지 더불어 춤춘다.
한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 ‘해운대 연가’가 오는 20일까지 미광화랑(부산 수영구 민락동)에서 열린다. 그는 해운대를 단순한 풍경으로 담지 않았다. 그 속의 사람들을 통해 지역성을 표현한다. 우리나라 최대 해수욕장을 낀 ‘해방구’ 해운대이기에 그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태어난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230명. 작품 수가 44편이니, 한 편당 다섯 명 이상의 낯빛과 몸놀림이 관객을 만난다. 105.8㎡(32평)의 화랑 내부가 생동감 넘치는 바닷가나 장마당으로 변한다.
‘해운대 연가’라는 타이틀처럼 전시작들엔 해운대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해변’은 피서철에 튜브를 집으면서 비키니 여성을 훔쳐보는 남성의 유난히 큰 눈에 시선을 모으게 한다. ‘해운대 달맞이’에서는 언덕과 건물, 자동차가 바다와 배와 함께 출렁이며 일체감을 이룬다.
한 작가는 익숙한 해운대 모습에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파랑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낸 ‘자화상’에서는 절규가 터진다. 바다 건너 매립지에 세운 빌딩들이 그 소리에 흔들리는 듯하다. ‘The marine cityⅡ’는 밑바탕을 분홍으로 채색하고, 광안대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뚜렷하다. 바다는 좁고, 인공물로 가득한 화면이다.
한 작가는 특이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헌책 노점상, 경비원, 청소부로 일해 온 세월이 길다. 정규 미술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40년 전 우연히 뭉크의 ‘절규’을 접한 후 시쳇말로 ‘미친 듯이’ 그림에 몰입했다. 주위의 격려는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큰 힘이 됐다. 창작에 매진하기 위해 11년 전부터는 본업인 가구점을 아예 접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우나 청소부와 건물 경비원은 최소한의 생계 수단이다. 아르바이트하다가 겪은 일화가 담긴 ‘아뿔싸’ 같은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한 작가는 “바다와 산, 강이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풍광과 그 속에서 활기차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날줄과 씨줄이 되는 이미지를 간직한 부산에 산다는 것이 화가로서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좀 더 자기 내부에 귀를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술 표현은 결국 내면의 정서를 나타내는 행위라는 생각이다. 벌써부터 다음 전시에서 관객을 찾을 비구상 작품 ‘우짜라꼬’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이다.//2018. 12. 11.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8. 12. 7. –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