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노트//
나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몇 가지 취향이 있는데 따져보면 결국 우울함으로 요약된다. 그래도 그런 때가 작업의 영감이 가장 깊어지고 맑게 떠오를 때다. 간혹은 여기에 너무 젖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유롭고 영적 희열과 즐거움에 혼자 행복해 할 때가 많은 것을 보면 평소에 우울을 즐긴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지 싶다.
그래서인지 작업의 표현들은 늘 어둡고 우울하며 또는 날카롭고 시사적이다. 사회성이 부족해서 어디에도 별 관심이 없지만 유독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사회적 관심사를 건드리고 쉽게 지나치지 못함이 아이러니 할뿐이다. 그러다보니 벗어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내 관심은 자연스레 문명과의 대치가되고 대립이 되어지기도 한다.
나는 모티브를 언제나 자연에서 얻고 문명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려 한다. 주로 동물을 매개로 주제를 잡는 것도 과학과 문명의 이기에 대해 동물들이 시각적으로 견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정서를 가진 자연의 개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속이나 활자 같은 이미지를 형상 위에 입히는 것은 이런 요소들을 대표적인 문명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내 나름대로의 논리이기도하다.
지금의 시대적 흐름에 빗대어 표현한 금속성의 차가운 질감형식과 그 이면에 겹쳐진 복잡하고 불안한 감정선과 오브제적인 면들, 희망을 암시하는 디테일의 시선 묘사 등은 다소 역설적이다. 의도적인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과 문명이 함께 지니고 있는 초상 같은 모습을 압축시켜 직설적으로 표현한 내 작업의 중요한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보여 지는 결과물은 파편적 다중성 또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적하는 나의 고함이 되고 그런 세상에 대한 나의 저항적 메시지가 된다.
예쁘고 아름답게 치장한 형식의 표현은 아니지만 내 감정에 충실한 터치와 대상을 후벼 파는 충동적 묘사는 아직 나의 에너지가 남아있는 증거라 믿는다. 쉽게 타협되지 않을 형태적인 감정과 색채적 감성 그리고 사상적 가치와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영적도구들을 애써 격려해가며 아직 남아있는 많은 얘기들을 더 깊고 더 젊은 언어로 묵묵히 표현하고 찾아 갈 것이다.
비록 앞이 어둡고 막연해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딱 한 가지 이유는 그 곳 만이 내가 아는 길이고 늘 깨어있는 그런 나를 만날 수 있고 그런 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작업 노트//
– 장소 : 김수정 아트스페이스
– 일시 : 2018. 2. 1. –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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