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그리는 화가 이영철
글 김옥렬
이영철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잊고 살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의 흐릿한 기억의 잔영과 이영철의 그림이 겹치는 순간, 그 열린 문을 따라 들어가면 마치 주술에 걸린 듯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가된다. 동심으로 가득한 그곳에는 따뜻한 햇살과 집과 나무들 그리고 꽃과 별빛으로 가득하다. 그 빛은 화가 이영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등불이다.
내가 이영철화가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1997년에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청년작가초대전에서였다. 당시 이영철의 작품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작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서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물고기와 새의 형상 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작은 그림이 가지는 흡입력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출판되었던 이영철 화가의 글과 그림을 담은 책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였다.
삶과 예술에 대한 그의 글과 그림이 실린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인간의 아픔과 고독 혹은 절망을 환한 그리움으로 채워가고 있는 화가라는 점이다. 그는 그리움에 담긴 눈물과 사랑을 꽃과 나무, 별과 달, 새와 호랑이, 소년과 소녀가 있는 풍경에 담아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화가 이영철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감흥을 담아 놓은 그의 그림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1. 마음의 등불을 켜다
이영철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지에 민감했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예민한 감성은 할머니를 대신했던 무덤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늘 따뜻한 눈빛과 포근한 가슴으로 안아주었던 할머니, 더 이상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기에 그 기억은 그리움이 되고, 그 기억의 잔상은 할머니의 무덤과 함께 있던 나무와 꽃과 바람에서 느꼈던 자연의 리듬, 바로 그리움의 빛이 아니었을까. 그 빛은 마음의 등불이 켜질 때 상상을 통해 만나는 이미지일 것이다.
이렇게 감성적이던 이영철에게 마음의 등불이 되었던 것은 삽화가 들어있는 책, 예쁘고 감동적인 그림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게 했다. 지금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은 빛과 그림자처럼 삶의 의미를 자연의 순환원리로 풀어내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순환하듯,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 역시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에서 작가는 별도 달도 따다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낸다. 그 마음의 깊이를 큰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 이번 전시에는 큰 그림을 많이 보여주겠다고 한다. 이미지가 커지니까 삽화 같은 느낌보다는 그림 속을 거닐듯 그림과 소통하는 효과도 보다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이영철이 그리는 세상은 순수한 꿈이 살아있는 동화 속 세상이다. 그러나 그 밝고 환한 동화가 단순한 위안일 수만은 없다. 이영철이 경험했던 유년과 청년시절은 미래에 대한 꿈과 두려움으로 방황과 번민을 거듭한 시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형과의 이별은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이자 그리움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친구를 잃은 아픔이 밀려오는 날이면 알 수 없는 그리움의 깊이에 빠져 헤매기보다는 독약 같은 슬픔을 술잔에 타서 삼키고, 밤하늘의 별들과 둥근달을 그리며 그 깊고 진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그린다. 이번 개인전에서 달을 많이 그리는 것은 달을 그리면 마음이 환해지고,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놓았던 밥이 마치 달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천명의 나이에도 이영철은 순수한 소년의 감성으로 세상과 자연과 교감하면서 일상의 경험을 동화적 감성으로 풀어내 그만의 판타지를 그린다. 그가 만들어 가는 판타지는 소박한 꿈과 따뜻한 시선으로 길어 올린 마음의 등불이다.
마음의 등불을 켜면 한편의 동화와 한구절의 시가 보인다. 그의 그림이 동화가 되고 시가 되는 것은 힘든 삶 속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그의 심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밝고 화사한 빛으로 그리며 예술을 통해 삶을 또 삶을 통해 예술을 변화시켜간다. 그것은 마음속에 깃든 그의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예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나의 그림이 밝고 가벼운 그림 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 같은 유희와 여성적인 감성을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나는 삽화를 그리는 화가, 작고 아기자기한 것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동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게 있어 그림이 주는 행복감은 작은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다. 나의 역할은 바다나 큰 강물이 되기 전에 작은 시냇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미술의 다양성 속에서 누구나 이해하는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재래시장 안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남쪽으로 난 창이 있어 따뜻한 햇살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그는 고단한 삶의 편린들을 그림에 담는다. 그 고단한 삶의 그림자는 환한 빛으로 현실과 이상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세상인 동화가 된다. 그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먼 산을 보듯 응시한다. 얼핏 스치는 눈빛에는 쓸쓸함이 가득하다. 그 쓸쓸한 세상을 그림동화로 채워가는 사람, 그래서 그의 동화에는 판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힘이 되는 익살과 해학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웃음꽃이 핀다.
2. 익살과 해학을 담다
“무엇을 그릴지 자꾸 생각이 납니까?
무엇을 그릴지 자꾸 생각이 납니다!
내 마음속에도 무언가 창문 같은 것이 생겼는데
열심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보입니다.
나는 그것을 털어내고 닦아서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지요.
그것이 내 그림이 됩니다.”(이영철의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중에서 p.30)
이영철에게 있어서 악몽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을 때라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그림이 밝고 환한 익살과 해학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익살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흥겨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미이다. 그래서 그림에 나타나는 익살과 해학은 억압되거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웃음으로 들어준다. 그 웃음은 민초들의 힘겨운 삶에 활력소가 된다. 예로부터 익살과 해학은 민화나 풍속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요소였다. 우리민족의 미의식인 자연미나 무기교의 기교, 비애의 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익살과 해학은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게 하고, 사납고 무서운 것도 친근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렇게 익살과 해학에는 우리민족의 생활감정이 깃들어 있다.
‘우스꽝스러움’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익살의 의미는 미적 범주의 하나로 골계미에 해당된다. 골계미는 자연의 질서나 이치, 인간의 모습을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익살을 부리는 가운데 교훈을 주는 미의식의 하나이다. 서양의 경우 ‘감정이입설’을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 립스(Theodor Lipps)는 골계를 “위대한 것을 위하여 준비되었던 마음의 긴장이 의외로 작은 것과 부딪쳐서 이완되었을 때에 느껴지는 일종의 쾌감”이라고 보았다.
이영철의 그림에서 보여 지는 익살은 유희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힘겨운 삶의 무게를 들어주는 희망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무엇보다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내는 그만의 유머가 들어있다. 그것은 집이나 나무 혹은 호랑이의 왜곡된 이미지가 냉소나 풍자를 담는 것이 아니라, 선한 열정에서 나온 아름답고 익살스러운 미적 형상의 리듬으로 민화적 의미를 동화적으로 해석하는 이영철의 미적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나운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그린 <호 몽(호랑이 꿈)>연작이나, 해바라기 화병에 호랑이 그림이 있는<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화병 안에서 물고기가 하트를 물고 있는 <어화(漁花)둥둥> 등은 그의 그림이 주는 웃음의 의미가 민화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자신의 미의식으로 필터링한 희망의 찬가이다. 집과 사람, 달과 별, 나무와 바람, 새와 호랑이 등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빛과 색채의 향연을 펼치는 이영철의 그림은 풍부한 환상과 구상적 이미지를 통해 색과 색을 겹치고 다시 철필로 선을 긋는 다양한 이미지의 상징들과 만나면 미소가 번진다.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듭니다.
피곤하고 걱정스러운 많은 일들이
마음에 상처를 내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마다 둥근 소리의 끝을 따라가 보면
웃음만이 희망이라고 합니다.”(이영철의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중에서 p.38)
3. 희망의 찬가를 그리다
이영철의 그림은 희망의 찬가이고 꿈꾸는 동화다. 그의 기억에 새겨진 유년 시절, 살가웠던 일상과 자연에 대한 회상은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동화가 되고, 상상의 나래를 펴면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 낙원으로 향하는 순수한 동심이다. 시골의 깊고 푸른 밤을 수놓은 달님과 별님, 드넓은 가을하늘 우뚝 솟은 미루나무, 언덕과 들판에 핀 원색의 꽃,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 내는 풀과 나무들, 이 모든 풍경을 화가 이영철은 따뜻한 시선으로 섬세하고 다채롭게 자연과 생명의 노래로 삶을 이야기한다. 그의 생명의 찬가는 그리 녹록하지 않은 삶 앞에서 느끼는 겸허한 태도와 그림의 안과 밖의 세계가 서로 다르지만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너와 내가 만나는 미적감수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영철의 그림이 주는 그리움이나 시적 서정은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이 작가의 감성으로 녹아들어 내면화된 것의 시각화이고, 그것은 봄날의 생기로 가득한 찬가가 된다.
세계를 지각하는 그의 시선은 가장 순수한 시기였던 어린 시절과 가장 순수할 수 있는 곳으로의 회귀를 통해 현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는 삶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약을 제조해내듯 그림을 그린다. 마치 과거의 아픈 기억과 슬픔도 그림을 통해 치유하고, 나아가 이곳과 저곳이 그의 그림 속에서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환한 그리움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어린 시절 꿈꾸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나무와 새, 꽃과 소녀, 별과 달이 되어 환상과 실제 사이를 상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서정적 감성으로 치유하듯 일구는 그림은 일상을 기록하는 작가의 일기가 전제된다. 이를테면 일상의 경험을 글로 쓰고 엽서와도 같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중에서 생명의 빛으로 가득한 그림을 선택해서 다시 캔버스에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크고 작은 캔버스에 달이 뜨면 환한 그리움도 뜬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이내 희망의 찬가가 된다. 그는 “달은 마치 내 삶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달을 그린다. 달은 나의 희망이고 꿈이고 그리움이다. 친구의 죽음에 슬피 울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친구를 향한 그리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그리움도 더 커진다. 그는 이 모든 그리움을 둥근달에 담아 놓는다.
“달이 차고 기우는 곳으로 흘러가는 삶
그 삶 껴안고 가는 희망이라는 식물
당신의 바다에도 달이 떴나요?
제가 부친 그리움 받아 보았는지요?
꽃은 뿌려진 눈물만큼 피어난다는데
그대를 보낸 시간의 능선에는 아직 바람이 차요.
여전히 보고 싶습니다.”(이영철의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중에서 p.61)
화가 이영철은 이렇게 절절한 그리움을 희망과 사랑의 찬가로 만들어 간다. 그가 ‘시들지 않는 꽃’을 그릴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시들어도 다시 피울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김옥렬//
– 장소 : 오션 갤러리
– 일시 : 2017. 4. 10. – 4. 28.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