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 숙성의 힘과 연금술
양준호(미술사 박사)
일상의 의미를 바꾼 예술, 오브제
표진수의 작업은 재료를 넘어 그 자체가 가진 의미와 성질을 새롭게 조명한다. 재료에는 기본적인 성질이 있다. 그 재료를 잘 이해하고 알맞게 조절하여 작업에 사용하는 것을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고 한다. 재료를 파악하여 성질을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예술가는 그 재료가 표현하는 최대한의 장점을 활용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작가들이다.
그렇지만, 작업에서 재료의 해석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택한 훌륭한 작가들도 있다. 마르셀 뒤샹은 일반 상품을 전시실로 그냥 들고 와 장소와 시간에 걸맞은 의미 변주로 예술의 영역을 넓혔고, 앤디 워홀이 <브릴로 상자>에서 재료의 성질을 바꾸어 상품성과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고, 마티스의 색, 헨리 무어의 뚫린 구멍 등도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표인숙의 재료 실험은 그런 맥락에 서 있다고 하겠다.
오랜 정성이 만든 재료실험의 결정체
표진수의 작업은 재료의 성질을 더 폭넓게 해석하고 규명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로 다루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나 오는 부산물은 온통 스테인리스이다. 다른 재료가 거의 없다. 철 중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은 개발이 되었을 때 내구성이 강하고 부식이 되지 않고, 가공된 상태에서 현상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주로 주방용품이나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오래 견딜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런 스테인리스 스틸에 적게는 5년이나 10년 정도 시간을 통해 계속 불로 열을 가했다가 하루에 한 번씩은 밖으로 끄집어내서 식히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또 열을 가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얻어진 결과물이 작가의 작업이다.
재료가 가진 기본적인 성질의 극단 점을 시험하는 실험적인 자세는 재료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동시에 재료의 힘과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물론 스테인리스 스틸도 오래 사용하면 부식이 된다. 그렇지만 그 변화되는 시간을 자연 상태의 부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변화를 끌어낸다. 재료 자체의 성질을 유지하되 갈라지는 표면의 틈 들의 조직을 균열의 틈새 거리와 갈라진 틈의 형상을 조절한다. 그의 접근은 마치 쇠를 자연에서 자라나는 나무의 줄기로 바꾸어 보는 듯하거나, 태워서 탄화된 숯의 표면을 연상하게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이 숯처럼 변해 있거나 나무의 둥치의 표면처럼 새로운 조직 결정을 가진다는 것에 신기함까지 더 한다. 나무로 숯을 만드는 일도 쉽지가 않은데 철에서도 절단하거나 가공하는데 ‘질기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나무 둥치 표면이나 숯과 같이 만든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보는 마음이 자라는 연금술
생명을 안고 가는 모든 것은 간절함이 있다. 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이 보여주듯이 그 간절함으로 물을 대듯이 작가가 표현한 작품 표면에 갈라짐은 척박한 이 시기의 토양에 생명수를 채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은 과학적 근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재료의 풍부한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여 이제까지 구현하지 못한 의미들을 일깨운다는 면에서 표인숙의 작업은 의미가 있다. 물감에 특정한 매제를 섞어서 몇백 년 더 견딜 수 있는 견뢰도를 만들듯이, 그는 정성과 불로 표면의 결정화를 새롭게 표현한다. 그 결정화는 나무 둥치가 바깥으로 자라서 껍질의 모습으로 자기만의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그의 작업 또한 그렇다. 생각의 바깥이 모습일 수밖에 없듯이 바깥으로 아주 조금씩 오랜 시간 넘쳐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표인숙의 질료는 풍성한 의미를 주는데, 연금술사처럼 반복하고 실험하여 시간의 무게를 넘어서 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재료의 힘에 모든 결정체를 고스란히 담아서 나타낸다. 연금술사가 만든 질료가 관람자의 눈앞에 펼쳐 서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감동의 무게로 존재하는 전시가 될 것이고 그 전시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준비한 5년을 훌쩍 넘는 인고의 세월이 작가의 몸에 고스란히 남은 듯하여 안쓰럽기까지 하다.//양준호//
– 장소 : 경인미술관
– 일시 : 2017. 3. 15. –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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