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POINT TO PENTAGON
– 신학철 · 오 윤 · 김정헌 · 강요배 · 황재형 –
김 동 화
금년(2016) 들어 민중미술에 대한 재평가와 관련된 다수의 전시회들이 유수의 미술관과 화랑들에서 연이어 열리고 있다. 이는 단색화라고 명명된 소위 모노크롬 회화의 열풍 이후 상업적 대안으로서의 차기 주자가 민중미술이 되지 않을까라는 미술시장 전반의 기대심리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겠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 이는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 전 이후 다시 한 번 새롭게 민중미술이라는 장르가 미술사적 정리와 평가의 대상으로서 심층적인 담론화의 과정을 요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사실의 명확한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인상파라는 명칭이 당대 서구 평론가들의 조소와 힐난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서양미술사에서 하나의 미술적 사조를 규정하는 용어로 확고하게 정립되어진 예처럼, 애초에 민중미술이라는 용어가 5공 시절의 한 고위 인사 – 이원홍(李元洪) 문공부장관 – 가 당시 일련의 미술적 흐름에 대해 불온성의 낙인을 찍기 위해 사용했던 부정적 맥락의 명칭이라 할지라도, 인상파라는 명칭이 그러했듯 이 용어가 지금은 한국의 미술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통상의 용어이므로 관례적 범위에서 이 명칭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민중미술이라는 장르적 명칭 속에는 제도권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예술가들의 미술 활동을 넘어선 당시 기층의 미술 운동까지를 전부 포괄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미술의 범주를 어느 정도의 수위나 경계까지로 정의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각개 평자들의 관점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본 전시에 참여한 5인의 작가들 – 신학철 ․ 오 윤 ․ 김정헌 ․ 강요배 ․ 황재형 – 이 자신을 민중미술 작가로 규정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은 이미 미술사적으로 1980년대 참여미술의 흐름과 연관되어 당대의 현실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던 작가군들이므로 필자는 이들을 ‘민중미술가’로,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민중미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하고, 이하의 내용들을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또한 이들은 통상적 의미에서의 민중미술 본류나 적통에 해당하면서도 이미 당대부터 상당한 수위의 회화적,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내었던 대표적인 작가군에 해당되기에, 이 전시회의 초대 작가로 선정하게 된 것이다.
올해 초 인사아트센터에서는 신학철, 권순철(權純哲), 민정기(閔晶基), 임옥상(林玉相), 고영훈(高榮勳), 황재형, 오치균(吳治均), 이종구(李鍾九) 이상 8인의 작가 작품들로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II – 리얼리즘의 복권’ 전이 개최된 바 있었는데, 필자는 이 전람회의 기획자가 전시 전체의 범주를 총괄하는 제목으로 ‘민중미술’ 대신 왜 ‘리얼리즘’을 선택했는가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적 상황에서 ‘민중미술’이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에 기반한 변혁성이라는 순수하고 협의적인 균질함(homogeneity) 쪽에 더 근사(近似)하다면, ‘리얼리즘’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다종하고 광의적인 불균질함(heterogeneity) 쪽에 더 근사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용어 – 리얼리즘 – 의 취택은 당연히 참여 작가들의 다양한 면면이나 미술적 특질의 혼재적 양상과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실 8인의 작가들 중 백보(百步)를 양(讓)한다 해도 고영훈과 오치균을 민중미술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상당한 어폐가 있고, 권순철은 이 둘 – 민중미술과 리얼리즘 – 사이의 경계에서 어느 한 쪽으로 편입시켜 분류하기에는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이들보다는 – 이번 5인전 출품 작가들이나 ‘리얼리즘의 복권’ 전에 출품되었던 민정기, 임옥상, 이종구 정도의 작가들 외에는 – 손장섭(孫壯燮), 노원희(盧瑗喜), 박불똥(朴相模) 등과 같은 작가들이 민중미술의 범주에서라면 더욱 타당한 선정이었을 것이다.
이질적 작가군들이 한데 섞여져 있는 이 전시의 제목 선정 – 리얼리즘 – 에는 민중미술의 비(非)대중적, 반(反)장식적 속성을 물타기 식으로 희석시킴으로서 이들을 미술시장의 주류로 편입시키려는 상업적 속내를 드러낸 띄우기 식의 기획적인 의도와도 상당 부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일 뿐더러, 이 리얼리즘이라는 명칭이 1980년대의 미술운동과 미술적 흐름을 규정짓는 용어로서도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즉 당대의 정치적, 변혁적 속성을 띤 협의의 참여미술을 엄밀하게 규정하려는 학예적 기조에서는 일부 작가군들은 그 본연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중미술이라는 명칭 자체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기까지를 아우르는 시기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된 참여 미술적 활동과 그 작업들의 범주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그러나 당시 치열하게 작업했던, 우리가 소위 지금도 민중미술 작가라고 통칭하는 작가군들 전체를 아직까지도 현재적 관점에서 민중미술 작가라고 계속 호명하는 것이 과연 유효하거나 타당한가 하는 문제를 지금에 와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이것을 지금은 용도 폐기된 과거의 역사적인 명칭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실효적 명칭이 될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으며, 오히려 각 작가별로 그들의 현재적 진행 상황에 따라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민중미술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분명히 구분해서 명명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맥락상 과거에는 민중미술 작가에 해당되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시대상의 변천에 따른 자연스런 작가의식의 변화이든, 부정적 의미에서의 변절이든), 과거나 현재나 여일하게 민중미술 작가로 규정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시작은 유사한 지점에 있었을지라도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흐름 속에 미술적 발언이 필요했던 현안으로서의 정치적 아젠다가 실종되면서 당대의 작가군들은 각기 다른 양상으로 자신들의 작업을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었고, 지금 이들이 도달해 있는 지점들은 서로 간에 불균질하며 상이한 양상들을 띠고 있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아직 현재 진행형의 작가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나갈지를 지금 상황에서 섣부르게 예단하기도 실은 어렵다. 민중미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거의 종료되어져 가고 있지만 그 당시의 미술을 일구었던 생존 작가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미완의 상황에 놓여 있기에, 이들의 미술적 시작과 현재의 지점을 두루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정치적, 시대적 상황과 그 변이는 물론 각 작가들의 향후 진행 방향까지를 더불어 예측해 볼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용지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게 될 5인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만으로 과거와 현재의 민중미술 전체의 면모를 다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작가들의 시작과 진행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민중미술의 지향과 시대정신을 개략적으로 일별하게 함으로서, 한 시대 미술의 흐름에 대한 전반적, 개괄적 이해를 얻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의 미술적 기조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에 걸친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이들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개인적인 감성이나 초점을 맞추었던 작업의 방향이 서로 간에 전적으로 동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어떤 가치나 정조를 묵묵히 화면에 담아나가고자 애쓰는 작가들도 있다. 어쩌면 민중미술 작가라는 이름은 시대가 그들에게 붙여준 레테르이고, 이제 와서는 이 레테르가 그들에게 거추장스럽거나, 또 굴레처럼 느껴지는 작가들도 있을 것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아직도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계속 그 정치성과 변혁의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이들이 지금까지도 민중미술 작가냐 아니냐의 문제가 한 화가로서의 진행 과정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는 점은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는, 너무나도 자명한 결론일 것이다.
이들 5인의 작가들은 거의 비슷한 시점에(from point) 동질적 의식과 유사한 방향성을 가진 작업들을 각기 시작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볼 때는 그 각각이 다른 위치에 놓인 다섯 개의 점으로 위상 변환된 오각형의 형태에 도달(to pentagon)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한 점(point)이 어떻게 그 위상을 달리하는 각각의 과정들을 통해 지금의 오각형(pentagon)으로 바뀌어나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른바 민중미술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미술의 통사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하나의 샘플로서의 프로세스가 될 것이다.
또한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도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진행해 나가게 될는지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작업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결과물들은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작업을 진행해 나갈지에 대한 단초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개 작가들의 진행 과정을 더듬어가며 그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울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의식 있는 한 작가가 가졌던 고민의 궤적들 속에서 그 과거의 진행 과정을 통해 지금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이 시대에 대한 문제와 앞으로의 시대 속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직관과 통찰을 제시하는 데에 이 관찰이 대단히 유효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방법론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미술을 감상한다는 행위가 시대의 저류를 파악해낼 수 있는 성찰의 획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면, 이들의 작업의 흐름을 고찰하는 것이 문제의 시대를 살아갔던 작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려 했는가에 대한 준거점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전시장의 여건이나 규모가 다소 불비하더라도 전시구도 상 각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의 양상들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구작과 근작을 함께 모아서 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한 유화 작업의 맥락 그 이전을 먼저 읽어 볼 수 있는 몇몇 드로잉들을 유화 작품들 사이사이에 더불어 배치함으로서, 발상 과정에서 드러나는 날것으로서의 미감을 관객들이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하였다.
예술은 과거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맥락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동시에 그것이 지금의 문제에 대한 해법의 제시와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의 시대를 표현했던 과거의 그림이 지금에도 그대로 반복된다면, 그것은 아직도 낡은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론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가 나아가야 할 민중미술의 길이다. 그것은 바뀐 시대의 바뀐 문제를 내용만 바꾸어 그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것을 그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안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내용의 문제에 더하여 회화적 발상과 미술적 형식의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 순수회화를 추구했던 작가들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표현이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 보편적으로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가의 문제까지도 그 고민에 포함되어야 한다.
신학철(申鶴澈)의 경우는 아직까지 여전히 세계의 변혁을 꿈꾸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민중미술에 충실한 작가이다. 그는 아직까지도 민중미술적 지점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정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림이 삶을 변혁시키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여전히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변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회화 형식을 그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야 할지, 본 전시를 통해 숙고해 보고자 한다. [동일체로서의 이름과 실재, 연합체로서의 그림과 삶]
오 윤(吳 潤)의 경우는 이 전시에 작품이 출품되는 작가들 중 유일한 작고 작가이다. 그의 작업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와 맥락, 춤으로 드러나는 동세의 기운이 표출되는 과정에 대해 주목하며 그의 작업을 독해해 나가고자 한다. 또한 그가 창출해낸 인물 도상의 전형성 문제와 상(象)의 미학에 대해서도 돌이켜 살펴보고자 한다. [기운생동과 활동운화의 미학]
김정헌(金正憲)의 경우는 회화와 키치라는 형식상의 이원적 중층성 및 내용상의 대비(contrast)가 이루어지는 연원과 그 연원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떤 식으로 펼쳐지며 진행되고 있는지에 주목하면서, 그의 폭넓은 정치적, 행정적 활약상을 예술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이원적 중층성과 대비의 미학]
강요배(姜堯培)의 경우는 가장 민중미술이라는 원래의 흐름에서 표면적으로는 벗어나고 있는 듯 보이는데, 이것을 어떤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구상에서 차츰 추상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작화의 과정에서 작가가 염두하여야 할 핵심적 포인트 – 서려있음 – 가 어떻게 풀려져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구상과 추상, 인지와 정서가 교차하는 접점으로서의 회화]
황재형(黃在亨)의 경우는 이전과 달리 급격하게 변화되어져 버린 태백이라는 자신의 활동 무대에서 처음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리얼리스트로서의 문제의식을 지금의 시대에 어떻게 적용시켜 나가고 있으며,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지향과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론으로서 도입되는 근작에서의 소재적 변화 등에 대해서도 짚어 보고자 한다. [현장에 밀착된 예술의 진실, 그 케노시스(Kenosis)의 미학]
이 전시는 서울이 아닌 부산, 그것도 유명한 대규모 화랑이 아닌 무명의 소규모 화랑에서 개최되는 전시이다. 그러나 전시장이 크고 화랑이 저명하다 해서 거기에서 열리는 전시가 전부 훌륭한 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건이 되어 많은 작품들을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작은 규모의 전시를 통해서라도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약간의 단초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이 전시는 그 어떤 전시들보다도 더 성공적인 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어수선한 해방공간의 서울과 전란 중의 피난지 부산에서 열렸던 ‘신사실파’ 전은 외관상으론 실로 초라하기가 짝이 없는 모양새였지만, 그 인적 구성이 신조형에 대한 고민을 지닌 당대의 의식 있는 1세대 모더니스트들 – 김환기(金煥基) ․ 유영국(劉永國) ․ 이규상(李揆祥) ․ 이중섭(李仲燮) ․ 장욱진(張旭鎭) ․ 백영수(白榮洙) 등 – 의 결집이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그 전람회가 가졌던 미술사적 가치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닿아오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전시에 초대된 5인의 작가들은 1980년대라는 문제적 상황과 그 상황의 변화를 열망하는 실천적 시대정신을 공유했던 상징적인 작가군들이다. 이들의 미술사적 가치의 무게 역시 신사실파 작가들의 그것에 못지않게 실은 만만치가 않다. 이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구작과 근작, 과거와 현재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정황은 그 자체로 대단히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이 언제 외형과 규모를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었던가? 그것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채의 눈빛이나,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더라도 더 깊게 응시하는 달관의 시선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명의 작은 공간에 이렇게 유력한 작가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예술을 기꺼이 보여주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도 꽤 괜찮은 이 시대의 예술적 모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모모한 대형 화랑이 아닌, 이런 무명의 작은 화랑을 전시 공간으로 선택한 작가들의 의외로운 결단과 행위가 팽배한 물량주의와 상업주의에 대적하는 이 시대 민중미술의 진면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태도(attitude)’가 ‘형식(form)’으로 된 것이 바로 이 5인의 전람회 ‘FROM POINT TO PENTAGON’인 것이다.//김동화//
– 장소 : 갤러리 인디프레스
– 일시 : 2016. 9. 7 –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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